[종교칼럼-삶-혜원 스님]온 곳을 모르는데 갈 곳을 어찌 알랴

2008.12.25 00:00:00

“나는 한평생 남에게 나쁜 일을 한 적도 없고 남한테 악담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니 나는 따로 종교를 갖지 않아도 잘살고 있고 이렇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자족하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한평생을 그런 자세로 일관되게 살아갈 수 있다든가 나쁜 일을 겪게 되었을 때조차 성숙된 인품으로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본다든가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평소에 자신은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충분히 입력을 시켜놓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부귀강녕이 고루 갖춰진 것을 뜻한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거기에 해당되겠지요. 하지만 잘 산다는 사람일지라도 번뇌와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결국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고 평소엔 가진 것을 잃게 될까 염려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사바세계를 고통의 바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일, 원하는 것을 욕심껏 다 가질 수 없는 일, 싫어하는 일이나 사람과 부딪히는 일 따위만으로도 삶은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태어난 것은 모두 죽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사망선고를 받아 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그것을 모릅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잘 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들은 흔히 ‘어차피 한 세상 사는 것 아무려면 어떠냐’하거나 ‘죽으면 그만인데…’라고 합니다. 그야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한 편의 영화를 보러 갔다가 움직이는 화면만 보고 거기에 담긴 의미는 새겨보지 못했다면 그 영화를 제대로 감상했다고 하시겠습니까? 또 내 인생 이만하면 되었다고 하시지만 인생이란 무언지, 나는 누구인지 모르면서 그저 몸뚱이 편안하고 배불리 먹고 좋은 옷 걸치면 그게 전부이겠습니까? 기껏해서 내 몸뚱이 돌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쏟아야 한단 말입니까?


죽으면 그뿐이라지만 도대체 온 곳을 모르는데 어찌 갈 곳은 잘 알아서 죽으면 그뿐이지 그 다음에 무엇이 남겠느냐고 자신있게 말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런 것들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한 결코 잘 산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내 삶, 내 인생만큼은 내가 전문가이어야 마땅한데 남에게 의지해야 한다면 그걸 잘사는 삶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고로 누구나,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났으면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고 그것을 밝히는 길이 곧 불법 공부이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일깨워주고자 들려주신 선각자들의 모든 말씀에 그러한 뜻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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