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김호영]듣고 싶은 말

2008.12.29 00:00:00

김호영<본지 집필위원>


최근에 MBC의 ‘뉴스 후’는 ‘손 묶인 구당 왜?’ 라는 제목으로 김남수 옹에 대한 방송을 했다. 뉴스 후의 방송 내용은 그가 침사 자격만 있고, 뜸을 뜨는 구사 자격증은 없으므로 무면허 의료행위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침구사제도는 한의사제도가 도입되면서 사라졌기 때문에 신규면허발급은 중단이 돼 있다. 김남수 옹의 경우 침사 자격은 갖고 있었지만 침구사 제도가 없어진 이상 구사 자격을 다시 취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면허정지를 당했다는 소식은 뉴스나 신문 등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알려졌으며 유명세를 탄 그를 시기한 한의사들에 의해 면허정지가 내려진 것이 아닌가 해 한의사들에 대한 비난여론과 함께 그에 대한 동정여론이 들끓었었다. 면허정지는 한평생 침과 뜸 시술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프로그램에서 그의 제자들이 수천 명에 이르며, 침구사제도의 부활을 주장하는 그가 제자라는 사람들에게 수료증을 주는 장면을 보면 과연 그 프로그램의 내용이 바람직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뉴스 후의 진행자는 “법과 제도는 국민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국민이 법과 제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다소 거창한 논리의 발언까지 했다.


김남수 옹에 대한 여론에 편승하기 위해서이겠지만 어느 국회의원이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뜸시술의 자율화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는 신속함을 보여준 것도 엄연히 한의사제도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KBS의 추석특집 프로그램 방송 이후 김남수 옹은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아왔는데, 대중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대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효험이 있다. 좋아진다. 낫는다.’ 이런 이야기는 아픈 사람에게 얼마나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인가? 노련한 시술능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픈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적절하게 해 주는 것 역시 뛰어난 위약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오랜 세월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능력일 것이다.
환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은 양날의 칼이라고 볼 수 있다. 긍정적인 효과만큼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암환자가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퇴원해 민간요법에 매달렸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며 치과의사들 역시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근거한 설명이 환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많이 겪는다. 오히려 비전문가의 이야기가 더 쉽게 받아들여지고 특히 무면허 돌팔이의 말을 더 신뢰해서 엄청난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치과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경우를 경험하지 않은 치과의사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나라의 치과의사들을 괴롭혀온 문제였는데,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고학력의 사회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오히려 이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일부 병의원이나 치과에서 어지간한 외판원을 능가하는 설득력을 가진 이른바 코디네이터들에 의해 진료가 왜곡돼가는 현장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주로 치료할 치아가 몇 개니까 가격이 얼마라는 것과 흥정이 주된 내용이다. 그런 방식으로 그 치과의 매출을 어느 정도 올릴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 그런 치과들의 존재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치과에 대한 인식은 급속도로 나빠지게 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듣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은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책임을 지는 것도 쉬울 것인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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