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론/신순희]고맙습니다, 추기경님

2009.03.02 00:00:00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


추기경님이 남기신 이 두 마디가 내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고 그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며칠간 지속된 당신의 추모 방송과 장례식 생중계를 오랫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우수에 찾아온 꽃샘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추운 명동성당 앞길의 긴 줄을 기다리며 직접 다녀간 조문객 수만 40만 명이라지요. 스님들, 목사님들 또한 종교를 초월해 한 마음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운구가 떠나던 날 아침은 많은 시민들이 문득 발걸음을 멈췄고 묵도를 했고 지나온 생과 삶의 의미를 잠시 반추해 보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얘기하듯 어른이 그리운 시대에 큰 어른이셨던 당신의 장례미사는 사실상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당신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주고 가신 안구기증의 뜻을 이어 장기기증 서약이 평소의 수십 배로 늘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돌이켜보면 소중한 많은 것들이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숭례문이 불타고 용산의 철거민들이 불타고 화왕산 억새밭의 관광객들이 불타며 우리 곁을 허망하게 떠나갔습니다.
모두다 우리 손으로 막을 수 있었던, 천재지변도 아닌 인재사고였기에 그 어이없는 슬픔과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고 많은 국민들의 가슴 한켠은 무너지듯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그 국민들이 이제 당신을 보내며 길게 줄을 섭니다. 독재정권에 맞서 나를 밟고 가라며 시위학생들을 지켜 주셨던 분을, 재개발에 밀려 쫓겨난 철거민들을 명동성당에 보듬고 함께 미사를 올리시던 분을, 평생을 장애인, 사형수, 빈민들의 곁에 머물며 하소연할 곳 없어 찾아 온 모든 이들에게 늘 한 뼘의 공간을 내어주시던 분을 보내드리는 마음이 길고 길어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월드컵 이후로 대한민국이 이렇게 하나되어 일치된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선종은 분명 슬픈 소식이었지만 당신이 남기신 건 슬픔을 넘어서는 어떤 힘이 아닌가 합니다. 참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허망함을 쓰다듬는 따뜻한 느낌이 조금씩 차오릅니다. 우리 모두 사실은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당신이 행하신 삶과 남겨주신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저도 언젠가 꼭 그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걸 사랑의 바이러스라고 하나 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사회가 분열과 반목만을 경험하고 있는건 아닐까 요사이 조금 두려웠습니다. 식민사관의 잔재일거라 머리를 저어봐도 우리 사회엔 온통 갈등의 역사뿐이 아닌가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양하고 개성있는 주장과 문화의 다원성은 한 사회가 발전하는 역동성의 근원이자 저력이겠으나 공동체의 근본적인 결속력은 합의와 일치에 있겠지요. 그것은 마치 돌아올 집이 있을 때 여행이 즐거운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런지요.


슬픔과 분노로 분열된 우리 사회에 과연 돌아갈 집이 남아 있기는 한건지 더럭 겁이 나던 때에 사실은 우리 모두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한다는 그 단순 명확한 사실을 떠나는 당신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신 추기경님, 정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겨주신 추기경님, 열심히 사랑하겠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던 당신의 뜻에 따라 낮은 곳을 보듬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까맣게 타서 재가 된 많은 마음들이 기꺼이 새 생명을 위한 거름이 되기를,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지금은 당신과 함께 계실 그 분께 낮은 목소리로 소망해 봅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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