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희 시론] 내 마음의 복권 세 장

2009.05.04 00:00:00

“돌아가신 아버지 지갑 속에서 우연히 복권 세 장을 발견했지요. 이 복권을 보고 한국 남성들에 대한 연민이 밀려왔어요.”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의 ‘남자 VS 남자’(개마고원)라는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젊은 나이에 아내를 잃어 홀로 아이들을 키웠고, 어느 날 갑자기 길에서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그의 아버지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서히 죽어간 전형적인 한국 남성으로 정박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지갑 속 복권 세장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도 이상하게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강렬한 공감을 느꼈던 것 같은데, 그걸 보고 한국남성들의 소통능력 부재에 연민을 품은 정혜신 박사에게도 공감을 느끼긴 했지만, 복권 판매소에서 산 복권 세장을 죽는 순간까지 지갑 속에 고이 간직했던 그 아버지에게 더 큰 공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내 생각에 아마도 그 아버지는 지갑 속에 꿈 세 조각을 간직했었을 것이다.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은 소망, 뭔가 다른 삶에 대한 상상, 혹시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설렘 따위의 꿈을 말이다.
 누구나 마음의 지갑 속에 각기 복권 세장쯤은 지니고 살지 않을까.

 돌아오는 연휴에는 그간 쌓인 피로가 다 풀릴 만큼 뒹굴거리며 푹 쉴 수 있겠지… 날 닮은 내 아이가 천재는 아니더라도 수재로 공부를 잘해서 내가 못 다 이룬 꿈을 이루어주겠지… 내가 산 주식이 언젠가 상한가를 치고 그때가 되면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겠지…등등등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 세상은 점점 더 살만해질 거라는 꿈들이 우리 삶을 이어가는 힘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일상의 소소한 꿈들은 비록 그 실현 확률이 로또보다도 작더라도 충분히 우리를 설레게 하는 힘을 지녔다.

 마흔 일곱 살에 홀어머니의 병수발을 드느라 결혼도, 데이트도, 심지어 키스조차 못 해봤다는 영국의 노처녀 수잔 보일의 지갑 속에 있던 ‘노래’라는 복권은 결국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녀의 천사 같은 목소리와 노래실력도 훌륭했지만 그녀가 마음 속 복권을 버리지 않고 끝내 도전했다는 사실에 나는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세상은 꿈꾸는 자들의 것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이다.

 2009년도 벌써 5월이다. 멀찍이서부터 기다리던 연휴도 바로 앞이다. 오늘 저녁에는 로또 복권을 하나 사서 지갑 속에 넣어 두려고 한다.
 토요일 오후 8시 45분, 금주의 당첨번호가 찍힌 공 6개가 화면 앞으로 굴러 나오기 전까지 나는 꿈을 꿀 것이다. 마치 연애의 감정과도 같이 설레는 꿈을 말이다. 나에게 8백만분의 1의 행운이 찾아온다면 우선은 멋진 오픈카를 한 대 사서 떠날 것이고 바람에 머릿결을 휘날리며 바닷가를 드라이브 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 다음 주에도 나는 지갑 한쪽 구석에 복권을 간직한 채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고 로또 추첨은 한 주로 끝나는 단막극이 아니니까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꿈이 없다면 우리 삶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꿈꾸는 자여, 세상을 다 가져라.
그대 이름은 젊음이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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