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2009.09.14 00:00:00

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50여년만의 정권교체가 이웃나라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선거혁명으로 가히 새로운 일본이 열린 것이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자민당의 제1당 구조를 종식시키고 일본 민주당에 과반이 훨씬 넘는 놀라운 지지를 보낸 일본 국민들이 ‘전후 최초의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10년 전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카피가 유행인 적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모바일 인터넷의 이동성을 강조하기 위한 문구였는데 사랑에 관한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했던 중의적 문구로 큰 인기를 끌었었다.


움직이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정치지도자에 대한 사랑(혹은 선택)도 그렇다. 민주국가에서 주권을 가진 국민은 그 뜻을 대리할 일꾼을 선거로 바꿀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국민들이 자민당을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했던 결과는 아니다. 부정부패, 파벌싸움, 경직된 관료 중심의 정치 등 장기집권으로 인한 폐해에 일본국민들이 염증을 느낀 것은 이미 오래였다. 그렇다면 왜 이제야?


그렇다. 사랑이 움직이고 싶어도, 정권을 바꾸고 싶어도 ‘대안’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내각제 일본의 최대 정치변화인 ‘총리사퇴’가 고작 자민당 내 계파간의 주도권 이동 정도였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한나라당내 친이계와 친박계간 당대표 경쟁 정도랄까.


자민당 외에 사회당, 공명당, 자유당, 공산당, 사민당 등 수 많은 야당이 존재했지만 그동안 수권능력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 대안 야당은 사실상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는 일본정치에도 대안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승리했다. 종신고용과 평등사회였던 일본에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것도 이번 정권교체를 이끌어낸 배경이었지만 바로 이런 대안의 등장에 비로소 일본 유권자들은 ‘선택의 권리’를 회복한 것이다. 바로 우리가 12년 전 그랬던 것처럼.

 

1997년 당시 한국 사회가 IMF라는 국가 부도위기를 맞아 큰 충격에 빠져 있었을 때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선거표어로 선택 가능한 대안이 되어준 이가 바로 얼마 전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5년간 대통령이었지만 평생 선생이라는 칭호가 훨씬 자연스러웠던 그분.


IMF사태는 지금의 금융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당시 많은 나라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우리도 어쩌면 국가부도를 맞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던 그때, “하늘이 나를 이때에 쓰시려고 그동안 준비하신 듯하다”는 선생의 말씀은 얼마나 든든한 위안과 믿음이 되었는지….


그런 분을 보내드리는 국장기간 동안 가슴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북받치는 감정과 설움이 가득한, 마치 어머니의 장례식과도 같았다면, 선생의 장례는 존경하고 의지하던 할아버지의 장례처럼, 격하게 슬프진 않지만 든든하게 믿었던 벽이 무너진 느낌, 포근하게 기댔던 거목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혹 92년 가슴이 뻥 뚫린 사람들을 그린 한겨레 만평을 기억하는 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대안을 가진 국민은 행복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년 전, 우리에게 절실한 대안이 되어주셨던 거목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 지금, 새로운 대안을 찾고 가꾸어 대한민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것은 오로지 남겨진 자들의 엄중한 몫이리라.


삼엄했던 군사독재시절, 목숨을 위협하는 탄압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화를 지켜주시고 궁극에는 우리에게 선택 가능한 대안이 되어주셨던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참 행복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안녕히… 가세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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