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 월요시론] 몽니를 씹어 보자

2010.10.25 00:00:00

월요 시론

김 신 <본지 집필위원>


몽니를 씹어 보자


원래 몽니라 함은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심술을 부리는 성질을 뜻하는데, 여기에서는 요즈음 한창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어느 연예인의 치아를 의미하는 내 스스로 만든 말이다.


서른 한 살인데 어금니가 열 한개 없다, 7~8년 전부터 생니를 의도적으로 발치해 왔다, 그게 아니라 치아가 워낙 안 좋아 공연 중에도 치아를 두 개나 뽑았다, 잘 아는 사이인지라 후배 의사에게 뽑아주라고 지시하였다, 비밀유지 대가로 수 천만원을 받았다, 발치를 하였던 치과 원장이 언론에 증언하였다, 지금까지 현역 입영 판정을 받았던 237명이 치아 상실 문제로 재검을 받아 공익근무로 전환되었다, 내년부터는 치아저작기능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징집에서 제외되는 제도는 사라진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들인가? 세간에 떠돌고 있는 이 모든 말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정말 어안이 벙벙하다. 어느 것 하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점입가경이요 진흙탕의 수준이다. 이제 막 기소가 결정되었으므로 실체적 진실은 재판을 통하여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의료윤리적 측면은 재판 결과와는 무관한 엄연한 가치이므로, 판결이 나오기 전인 지금도 논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되어 이 글에서는 이 문제에 관하여 씹어보고자 한다.


치과인의 한 사람으로 이 사건에서 짚어볼 윤리적 쟁점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 환자가 요구하면 치료가능한 치아도 발치를 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경찰의 말대로라면 치료가능한 치아를 3개 뽑았다는 발표를 하였는데, 그것은 아마 진단 자료를 통한 전문적 판단에 근거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도 환자의 징집면탈 의도를 알았으면서, 또 병역 브로커의 메뉴 중에 고의 발치가 들어 있다는데, 그간 밝혀지지 않은 발치가 더 많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미용실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모발을 정리해 주며 설사 빡빡 머리를 원하더라도 그대로 해 주고 이에 대해서는 어떤 시비도 있을 수 없다. 머리카락은 몇 달 지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자란다.


요즈음 치료계획 수립에 있어서 환자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져 가고 있다 하더라도, 정말이지 이것은 아니다. 의료인의 모든 의료행위에는 몇 가지 선결조건이 있어야 한다. 환자의 주소, 과거 병력, 현증의 주 객관적 판단과 각종 검사결과를 근거로 하여 진단 및 치료계획 수립, 그리고 치료행위가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과정이 절차적, 내용적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환자가 원하였더라도 소위 생니를 뽑는다는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과연 얼마나 충족되었을지 의문이다. 만일 징집면탈 의도를 알고도 생니를 뽑아 주었다면 법리적인 지식에는 문외한이긴 하지만 병역법상 고의적 징집면탈을 위한 자해 방조나 적극 가담에 해당하는 죄목이 성립하지 않을까? 


둘째의 쟁점은 우리가 직업상 알게 된 환자에 관한 사항은 절대로 비밀로 해야 한다는 기초적인 윤리강령에 관한 문제이다. 의료법 제19조는 “의료인은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히 규정된 경우 외에는 의료·조산 또는 간호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어느 치과의사가 생니인 줄 알면서도 후배 의사를 시켜 뽑아주도록 하고, 비밀 유지를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고 스스로 증언하였다면, 이것은 의사윤리 뿐 아니라 의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이며,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여 파렴치하기까지 하다. 생니를 뽑은 것에 보태 이 부분에서 부도덕의 극치를 이룬다.


마지막의 윤리적 관점은 이 사건을 대하는 치과인(치협 포함)의 자세이다. 모두들 숨죽이고 지켜만 볼 텐가? 이 사건이 이대로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서 종국에는 국민적 비난으로부터 치과계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 더구나 저작기능이 아무리 불량하더라도 징집면제 사유에서 제외시키겠다는 병무청장의 국회 답변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대응를 할 것인가? 정말로 저작이 불가능한 청년들이 징집되어 군생활에 부적응하게 된다면 그 원인은 누가 제공한 것인가? 과거 군 시절에 징병 신체검사 군의관을 지내 본 나로서는 이 부분에 관심이 없을 수 없다. 다수 치아 결손으로 인한 어떠한 저작기능 장애도 이제부터는 징집면제 사유가 되지 못 한다면, 치과계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진정으로 바란다. 이 사건이 우리 내부의 윤리적 재무장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기를. 그러러면 이대로 숨죽이고 결과를 지켜 볼 것이 아니라 우선 누군가 우리 대표가 나서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내거나 이 사태를 바라보는 치과인의 정리된 입장이라도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고도의 저작 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행정 당국의 설득에 나서야 할 것 아닌가? 


거듭 말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이 아닌 하룻밤의 진땀나는 악몽이었기를 바란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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