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지혜로운 자가 더 아름답지 아니한가!

  • 등록 2017.12.15 09: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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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 중에 하나가 대뜸 소크라테스에게 “너 어디서 오는 거야? 알키비아데스와 놀다 왔지?”하며 다그친다. 알키비아데스는 당시 10대 후반의 나이로 아테네 최고의 미남, 곧 ‘섹시 가이’로 소문이 자자했다. 맞다. 그날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맞아. 그러나 난 그 녀석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지.”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알키비아데스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아테네에 또 있었던가? 소크라테스는 그 사람 때문에 알키비아데스가 곁에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고백했다. 도대체 누굴까? 그는 압데라 출신의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였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보게 친구, 가장 지혜로운 것이 어떻게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겠나?”(플라톤, 『프로타고라스』 309c)

소크라테스의 말대로라면, 프로타고라스는 지혜롭기에 아름답고, 요즘말로 하면 ‘뇌섹남’인데, 뇌섹남은 알키비아데스와 같은 얼짱, 몸짱보다 더 아름답고, 더 섹시하다는 것이다. 사실 ‘아름답다’로 번역된 그리스 말 ‘칼로스’(kalos)는 ‘생김새가 좋은’(eueidēs) 외모, 즉 육체적인 아름다움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외모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과 흥분이 정신적인 대상에 대한 감동과 감격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은 육체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에로 옮겨져 적용될 수 있음을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정신적인 아름다움 사이의 비교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섹시한 알키비아데스보다는 가장 지혜로운 프로타고라스가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말은 좀 수상하다. 그가 가장 지혜롭게 보인다고 말한 프로타고라스는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로 꼽힌다. 소피스트는 흔히 궤변론자로 이해되는 일그러진 지식인의 표상이다. 지금도 그렇듯이 그때도 그랬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사상과 행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날선 지성의 칼날을 휘두르면서 소피스트의 아킬레스 건을 노리며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철학자였다. 그런 그가 프로타고라스를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표현했으니 수상할 수밖에. 그뿐만이 아니다. 이 만남에 대한 기록은 플라톤이 지어낸 것인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분명히 철학을 표방하며 더욱더 신랄하게 소피스트를 비판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를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말하게 했을까? 정말로 그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소피스트에 대해, 적어도 프로타고라스에 대해 모종의 존경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언명 자체는 진실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육체적인 것에서 끝나는가, 아니면 그 이상으로 상승하여 정신적인 대상으로 고취되는 것인가? 그래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가장 육감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보다 더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답은 분명하다. 인간의 고유한 아름다움, 보다 고상하고 품격 있는 아름다움은 외모를 꾸미는 데에서가 아니라 지혜로운 영혼을 다듬어 나가는 데에 있다는 신념은 그들에게 확고하다. 그렇다고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쉽게 무시하고 소홀히 해야 할 만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알키비아데스와의 만남을 즐거워 했으니까.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육체적인 아름다움 역시 선망의 대상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생각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서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은 육체적인 것에서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벗어나 ‘아름다움’ 자체를 지향하며 정신적인 대상으로 고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참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philokalos)은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philosophos)와 같다는 말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 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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