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9월 15일부터 20일까지 일본 오사카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ISO/TC 106 Dentistry 55th Annual Meeting에 참석하였다. 일본은 10년 전인 2009년에도 오사카의 같은 장소에서 제45차 총회를 개최한 바 있어서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총회가 일본으로서는 Oiso(1983), Kyoto(1995), Osaka(2009)에 이어 네 번째 유치한 회의였다. 금년에는 21개국에서 총 345명의 전문가가 참석했으며, 개최국인 만큼 일본이 136명, 미국이 45명, 독일이 29명, 그리고 다음이 한국으로 28명이 참석하였다. 일반적으로 표준은 이해당사자 그룹을 제조자, 소비자, 학계로 구분하는데, 의료기기 분야는 각 국가에서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해당 규제기관을 추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이번 오사카 회의에 제조자 측에서는 8명, 소비자 측인 대한치과의사협회 및 임상의가 8명, 학계에서 10명, 그리고 규제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2명이 참석하였다.
필자는 ISO/TC 106 내에서 WG 10, Biocompatibility of dental materials과 SC 8, Dental implant system 분야에 참석을 해 왔고, 이번 참석이 2003년 호주 시드니 회의 참석 이래로 17번째 참석이었다. 2018년부터는 SC 8/WG 7, Adaptability of dental implant system의 convenor로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ISO/TC 106 Dentistry(치과전문위원회)는 ISO 산하의 총 325개의 Technical Committee(TC)와 Project Committee(PC) 중 1962년에 106번째로 설립되었고, 그 하위로 8개의 subcommittee(SC)와 1개의 working group(WG)을 운영하고 있다. 각 SC가 다루는 주제는, SC 1이 Filling and restorative materials, SC 2가 Prosthodontic materials, SC 3이 Terminology, SC 4가 Dental instrument, SC 6이 Dental equipment, SC 7이 Oral care products, SC 8이 Dental implant, 그리고 SC 9가 Dental CAD/CAM systems이다. 각 SC에서는 세부 주제에 따라 여러 개의 작업반(working group, WG)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WG에서 관련 치과의료기기의 용어, 품질, 시험방법 등에 관한 국제표준을 제안하고 발행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ISO 웹을 통하여 on-line으로 진행하는 한편, 매년 개최되는 ISO 총회에서 off-line으로 진행하게 된다. 각국의 전문가들은 이미 on-line 상에서 개발 표준에 관한 세부내용, 시험소간 상호평가(inter-laboratory test, ILT) 결과 등을 공유하고, 자국의 입장을 표하기도 하며, 투표를 통해 찬반 의견을 제출하게 된다. 총회에서는 웹 상에서 결정하지 못한 내용이나 논쟁이 되는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각 WG convenor의 주재 하에 토의하고 결정을 하게 된다. 회의 기간 동안에는 여러 개의 회의장에서 각 WG 별로 2~4시간 동안 동시다발로 현안 논의가 진행되며, 여기서 도출된 회의결과(resolutions)는 WG가 속한 SC plenary 미팅에서 재확인되며, 마지막날 TC 106 plenary 미팅에서 최종 승인되는 절차로 진행된다.
표준이란 현대 사회를 이루는 제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통일 규격을 의미한다. 이 표준을 통하여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져 매우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하게 되며 인프라 구축도 용이해질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도 개선된다.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Standard)는 1947년 설립된 이래 현재 150여개 국가가 참여하여 많은 사람들이 표준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표준의 역사로는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을 표준의 효시자로 볼 수 있다. 그는 중국 대륙을 통일하여 진나라라는 단일 국가를 세우기도 했지만, 영토 이외에 많은 것을 표준화 함으로써 통일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는 석궁이라는 무기에 대한 표준화를 이루었고, 문화적으로는 문자의 표준화, 경제적으로는 화폐의 표준화, 사회·인프라 면에서는 수레바퀴의 폭을 표준화 함으로써 도로의 폭을 표준화 할 수 있었다.
각 나라의 대표들이 협력하여 국제표준을 제정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상품 및 서비스의 품질을 개선하여 제조자와 소비자, 그리고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도모하고, 국제간 교류를 원활하게 하여 국제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각 나라는 자국의 국가표준을 제품의 개발과 생산 및 수입 허가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국제표준과의 조화를 통하여 무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큰 국가일수록 국제표준과 국가표준의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나라의 방위와 건강에 해당하는 분야는 국제적으로 기술장벽을 용인하고 있지만, 그래도 국제표준에서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만족하는 의료기기라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허가 과정에서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기 분야에서, 특히 치과의료기기 분야는 이미 수출 주도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국제표준을 준용하는 의료기기를 개발, 생산하고 수출을 통하여 우리나라 경제에 이바지해야 한다. 따라서 국제표준의 개발 동향에 민감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표준을 제안하고 개발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표준정책을 주도하는 정부의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Korea Agency for Technology and Standards, KATS)으로서 1963년 ISO의 정회원국으로 가입하여 회의의 주요 의결 사항에 대한 투표권을 가지고 있으며, 현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ISO/TC 106의 대한민국 대표단은 2002년부터 꾸준히 참석하면서 입지를 조금씩 넓혀왔고 2015년 방콕 총회에서 최종 승인된 오스테오톰에 대한 국제표준 발행을 주도하였으며, 현재는 발치 겸자, 상악동 막 거상기, CAD/CAM의 상호운용성, 치과 수술칼 손잡이, 트래핀 버 등 총 6편이 한국이 제안하여 국제표준으로 발행되었다. 현재는 근관장 측정기, 구강 카메라, 치과기구용 스테인리스강, 임플란트의 적합성 시험방법, 임플란트용 어태치먼트의 유지력 측정방법, 임플란트 시술용 티슈 펀치, 근관충전용 팁, 휴대용 진료의자 등 8종의 표준을 제안하여 개발을 주도하고 있고, 3명 한국대표가 WG convenor로 활동하고 있다.
ISO/TC 106의 정회원국이 29개 국가라고 하지만, 표준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국가는 독일, 미국, 일본, 프랑스, 그리고 한국 정도이다. 보통 WG 회의에는 각 나라에서 온 약 25~50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데, 주로 convenor와 매년 참석하여 회의의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계속 노출시키고 친분을 쌓은 전문가들 간의 활발한 논의가 이뤄진다. 특이한 점은 한국을 제외한 주도국들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제조자 그룹들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학계 그룹의 참여자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제품의 개발이나 인허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준 등 주요 논점 사항에 대해 기업의 이익을 고려하여 즉각 대응할 수 있지만, 학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 대표단은 한국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기엔 한계가 있다.
필자가 2003년도에 ISO 본부가 소재한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국가기술표준원 주재원으로 계셨던 최갑홍 박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선진국은 표준을 만들고, 후진국은 표준을 따라간다.” 최갑홍 박사님은 돌아오셔서 국가기술표준원장과 한국표준협회장을 역임하셨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특임교수 계시면서 우리나라 표준 선진화에 기여하고 계신다. 우리나라 치과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표준에 대한 제조자 단체의 관심과 참여가 더욱 중요하다.
미국표준협회(American National Standards Institute, ANSI)는 미국치과의사협회를 미국의 치과관련 표준을 개발하는 기관(American Dental Association/Standards Committee for Dental Products, ADA/SCDP)으로 지정하여 미국표준개발과 국제표준 업무를 위임하고 있다. ISO의 mirror committee(SUB TAG)를 구성하여 각 분야의 제조자, 소비자, 학계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매년 IADR/AADR 학회 기간에 회의를 통하여 국제표준 대응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표준 정책도 미국의 제도와 유사하여 국가기술표준원은 산업표준화법에 따라 2008년부터 각 전문단체를 표준개발협력기관(Co-operation Organization for Standards Development , COSD)으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대한치과의사협회도 2008년부터 치과분야 표준의 표준협력개발기관으로 지정 받아 표준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치과분야 표준화 업무에서는 이해당사자 중 소비자 그룹에 해당되어서인지 소비자와 학계의 참여가 활발한 반면 제조자 단체의 활동이 저조한 편이다.
산업표준화법에 따라 우리나라의 국가표준 개발, 관리와 국제표준 대응 업무는 국가기술표준원 (KATS)이 전담해 오다가 2017년부터 일부 표준은 각 전문 국가기관에 이양하기 시작했는데, 식품, 의약품 및 의료기기 분야의 표준화 업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 이관되었고, 이에 따라서 COSD의 지원과 관리 업무 또한 식약처로 이관되었다. 하지만 식약처 내의 조직, 인원, 예산 및 전문성에 있어서 아직 완전한 정착이 이루어지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초기이어서 그럴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식약처의 의료기기 인허가 업무에서 중요한 기술문서와 시험방법 및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ISO 국제 표준이므로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점차 나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치과의료기기의 소비자인 치과의사 역시 자신이 사용하는 치과재료나 장비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수준을 평가하고 기준값을 제시하는 국제 표준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치과대학(원)에서 이루어지는 치의학 교육 과정 중 '치과생체재료학'이라는 과목에서 치과재료의 표준을 언급하고 있는데, 기초학 과목인데다가 강의 시간 또한 적어서 그 중요성을 충분히 교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표준화 활동의 저변이 넓혀져야 국제표준화 활동의 동력이 생길 수 있다. 국내 표준화 활동의 저변 확대와 전문가 양성을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의 상생과 협력, 정부의 제도적, 행정적 시스템 구축, 관련 전문가 및 학계의 참여, 사용자의 요구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할 것이다. 기업은 자사의 이익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자사의 우수한 기술이 표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기업은 차별화된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R&D에 투자하고 더불어 표준 개발에도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표준을 선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국제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동종업의 타 기업과도 협력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역할은 이미 의료기기의 규제기관인 식약처가 주관 부처가 되었으므로 본연의 업무에 필요한 국제표준의 수용뿐만 아니라 표준 개발에 대한 지원 절차를 마련하고 표준 회의 참여에 대한 지원 정책도 마련해야 한다. 소비자 단체인 대한치과의사협회는 COSD로서 학계와 손잡고 미래 치과의사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표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회원인 치과의사들에게 표준의 현안을 적극 홍보하여 우수한 품질의 치과재료를 선택하여 진료에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국민 구강보건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김광만 교수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과생체재료공학교실
ISO TC 106 Dentistry, Expert
ISO TC 194 Biocompatibility of medical devices, Expert
ISO TC 106/SC 8/WG 7 Convenor
ADA/SCDP m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