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의료봉사를 가는 이유

2020.04.10 09:19:23

스펙트럼

치전원 입학 전 학부 시절부터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대단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다녀온 봉사활동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음속이 뿌듯함과 따뜻함으로 가득 차는 걸 느꼈습니다.


개인적인 만족감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시간 날 때마다 학교 주변, 가까운 곳들로 봉사를 다니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경북대 치전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본과 2학년 때 외래교수님께서 제게 해외 의료봉사를 권유하셨습니다.

 

해외 의료봉사가 궁금하긴 했지만 크게 의미를 두진 못했습니다. 비용도 비쌀뿐더러,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비운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주변에도 힘든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돈과 시간을 과하게 써가며 외국에 나가는 것은 일종의 사치로 느껴졌습니다.


국내 봉사활동만 수년간 하면서, 그런 마음들은 더 굳어졌던 듯합니다. 지금 내가 내는 이 항공료로 국내에 있는 분들을 돕는다면 더욱더 값지게 도울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번은 가보고 싶었기에 이번 기회에 지원하였습니다.

 

하나둘 준비하였습니다. 현지 역사, 경제, 의료와 교육 등 다양한 부분들을 공부하였습니다. 아! 그들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비참하고 열악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근현대사에 큰 관심이 없어서 이제야 이런 상황들을 알게 되었단 사실에 참으로 속상했습니다. 현지에 이미 봉사를 갔다 오셨던 분들의 후기를 읽어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생각보다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약물들을 준비하고, 또한 치과 도구들도 준비하였습니다. 발치 위주의 진료를 볼 것 같아, 외과 기구들을 주로 준비하였습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1년에 1주일을 가봐야, 일회성 진료에 불과하므로 살릴 수 있는 치아도 뽑고 와야 한단 상황들을 담담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없기에 환자 한 명당 하나의 치아만 치료할 수 있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냉정하게 환자를 쳐내야 하는 저의 역할을 인지하였습니다.

 

현지에 도착한 후, 3일간 정신없이 어시스트를 하였습니다. 많은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약을 줄 때, 꼭 다 먹어야 한다고 설명하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기에 저희가 준 약들을 되팔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진료 시작은 9시지만 새벽부터 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치과 치료를 받아봤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번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환자의 치아를 발치하려 포셉으로 잡으면 대부분 바스라졌습니다. 또, 7세 정도의 환아의 6번 치아는 이미 썩어, 그 사이로 드러난 증식된 신경조직만 빨갛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저번 겨울에는 이 마을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한파와 기근이 겹친 데다가 전염병까지 퍼졌습니다. 마약 때문에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무사히 봉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아주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일주일의 시간이 무슨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돌아와서 멍하니 한 달쯤 보냈습니다.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하여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그들은 절대적인 빈곤 속에서 지내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꾸준히 국내 봉사를 다니기를 반복하다가,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 매년 필리핀으로 의료봉사를 다녔습니다. 어시스트에서 진료로 종목을 바꾸며, 올해로 5년째 가고 있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입니다.

 

<필자주> 안녕하세요. 이번부터 기고를 시작하게 된 거제시 공보의 이은욱입니다. EUNUK(은욱)이라는 예명으로 음악 활동도 겸하고 있습니다. 두 달에 한 번쯤 다양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봉사 준비가 상당히 미뤄지기도 하여 참 불안한 마음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은욱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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