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얼마 전 지하철을 탔을 때 신선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으로 책을 보기도 하겠지만 종이책을 펼쳐서, 그것도 젊은 사람이 책을 읽는 모습은 너무나 오랜만이었습니다.
우리의 젊은 날의 고뇌에는 책이 곁에 있었습니다. 작가의 무게감에 짓눌리기도 했지만,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헤르만 헤세, 헤밍웨이, 카뮈에 열광했습니다. 삼국지, 초한지 정도는 읽어야 했고, 그리스로마신화를 읽다가 신의 이름을 외우는데 애먹었습니다. 그렇게 종이책은 젊은 날의 땀과 고뇌를 고스란히 묻어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독서는 물론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책을 읽고 있는 젊은이를 이렇듯 신기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입시와 취업에 필요한 독서 외에는 자신이 즐기지 못하는 책 읽기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젊은이가 읽고 있던 책이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서점에 들러서 그 책을 사고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왠지 그 책을 읽으면 젊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날의 독서는 아름답습니다.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봐야 할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의 신작
버겁고 외롭지만 함께라서 가능했던 그날의 이야기들
『귤의 맛』 문학동네, 2020
지하철에서 젊은이가 읽던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잘 알려진 조남주 작가의 새로운 장편소설입니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있을 법도 하고 지금 키우고 있는 아이들에게서도 있을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학교 이야기, 성적, 친구, 우정 등 모두 이 또래의 아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쉽게 아이들에게 그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지 못한 어른들의 눈높이에서도 진지하게 읽히는 책입니다.
나의 젊은 날은 어땠는지, 지금 아이들의 고민은 무엇일지 생각이 많아지는 책입니다. 새로 다가오는 시간은 때로는 버겁고 외롭습니다. 어른들도 그럴진대 아이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낯설고 힘든 시간을 보낸 어른들과 지금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최초의 항생제, 설파제는
어떻게 만들어져 인류를 구했나
『감염의 전장에서』 동아시아, 2020
코로나19 때문인지 이제는 모두 바이러스라고 하면 치를 떱니다. 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인류의 적은 세균이었습니다. 지금은 항생제 때문에 많은 세균성 감염이 치료되고 있지만, 항생제가 없던 시기에는 가벼운 상처에도 세균 감염으로 죽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의대에 다니다가 독일군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병을 치료하는 임무를 맡는데, 수많은 부상병과 수술 장면을 목격하고 “이런 상황에서 대수술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감염 없이 해내 환자가 상처 감염으로 죽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내게는 놀라운 일이었다”라고 회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를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심술궂고 비겁하게 사람을 살해하는 이 지독한 적”인 세균에 맞추며 다짐합니다. “나는 이 파멸적인 광기에 맞서겠노라고 신과 나 자신에게 맹세했다.” 그리고 훗날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를 발명합니다. 도마크는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를 발명하고 노벨상까지 받는 이 이야기의 주역이지만, 이 책의 재미는 단지 도마크의 행적만을 따라가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세균 감염이 당시 과학자와 의학자들에게 어떤 위협이었는지, 독일,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국가와 거대 제약회사는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딱딱한 감염병에 대한 안내서 같은 내용이 아닌 흥미진진한 소설 같은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게 450페이지를 넘길 수 있습니다.
김종철 시인의 작품과 시 세계
‘문우(文友)’이자 ‘지우(知友)’ 사이의 인생 고찰
『못의 사제, 김종철 시인』 문학수첩, 2020
예전 못에 대한 시인의 작품을 읽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못이라는 소재는 독특합니다. 어느 집안에서든 하나쯤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마운 존재지만 삐져나온 못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가슴에 못 박는 사람을 원망하지만, 종교적인 십자가의 못은 신성합니다.
이런 독특한 한 단어의 ‘못’을 김종철 시인처럼 다양하게 시로 빚어낸 사람은 드뭅니다. 시인의 시를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논평했던 지인들이 작고한 시인의 기일에 맞춰 매년 한 권씩 발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그 계획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되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무엇보다도 재밌습니다.
단순히 시만 읽는다면 다소 난해하기도 할 수 있지만, 작품의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자가 김종철 시인의 작품과 시 세계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 분석하고 고찰한 이 책은 여느 평론집과 달리 시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저자의 폭넓은 이해와 함께 날카롭고 냉철한 비판, 그리고 진심 어린 격려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