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게 아주 재미있는 기회가 생겼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Universiti Sains Malaysia(이하 USM)의 치과대학 학생들과 만나게 되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자면, USM에서 주최하는 여러 국가(말레이시아, 영국, 한국, 일본, 호주)의 보건 계열(의학, 치의학, 보건)을 소개하는 웨비나(webinar)에 내가 한국 치과대학 대표로서 speaker가 된 것이다.
무려 900명 가까이 되는 참여자들 앞에서 한국 치과대학을 대표하여 발표를 해야한다는 것이 상당한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더해 40분 동안 영어 발표라니! 한국어로도 해본 적 없는 그런 발표를 영어로 해야한다는 게 끝까지 포기할까, 말까 시험에 들게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냈고,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이 웨비나를 통해 재미있는 사실들을 많이 알았다. 첫째, 말레이시아 친구들이 한국에 갖는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국 대학생들이 즐겨하는 것이라면 그 친구들도 모두 알고있었다. 아이돌은 내가 더 모르는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었고, 웨비나가 끝난 이후에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는데 한국어로 보낸 분들도 많았다. 졸지에 한국어로 보내신 메일을 내가 영어로 답장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한국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문득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둘째로 우리나라의 대학 생활에는 사실 큰 즐거움이 있었다. 역시 비교를 해야 새롭게 보인다고, 우리 나라의 전치제(전국 치과대학 축제)와 활발한 동아리 활동을 하는 곳은 우리나라 뿐이었다. 많은 청중들이 우리의 그런 학업 외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런 활동을 할 시간이 되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질문이 쏟아졌다. 내 학교생활에 낭만은 없고 공부로만 꽉 찬 줄 알았는데 그저 익숙해진 것 뿐이었다. 괜시리 동아리 활동과 축제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셋째로 치과와 관련된 다양한 차이가 존재했다. 말레이시아에는 치과위생사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에, 한국에서 치과위생사가 없는 치과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데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치과위생사라고 특별히 칭하지 않고, 치과대학 학생이 받는 교육을 똑같이 받은 후에 추후 하나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는 듯 했다. 우리나라의 간호사와 비슷한 느낌으로 느껴졌다.
약 40분 정도의 발표 시간동안 말레이시아의 치과대학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정말 많이 다르구나, 와 동시에 다 똑같구나, 라고도 느꼈다. 멀리 떨어져있고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친구들이었지만 서로의 삶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9시부터 6시까지 이어지는 끊임없는 수업 속에 한 시간 있는 소중한 점심시간마저 수업이 늦게 끝나서 없어져버리는 일이 허다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엔 박수를 치며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람 사는 것 역시 다 똑같구나 하면서도 그곳의 환경을 듣다 보면 너무 큰 차이들을 느낀다.
현재 말레이시아 치과 사회에서 큰 문제 중 하나는 무면허자의 치료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그곳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 비슷했지만 사회의 모습은 정말 달랐다. 그렇기에 이 웨비나가 나에게는 정말 값지고 재미있었다. 가만히 방에만 있었다면 알지도 몰랐을,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들에 대해 호기심과 열정이 생겼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느라 전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연습했다. 그러나 사실 영어는 조금의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내 문법을 지적하려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나의 경험을 듣고 싶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지난 지가 벌써 한달이 지났는데 또 떠올리니 여전히 벅차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말레이시아의 친구들과 유대감을 느꼈고 진정으로 소통하며 즐겁게 대화했다. 나중에 내가 컨퍼런스에 참여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이 문득 스치기도 했다.
글로벌이라는 말이 거창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이제야 알았다. 이게 글로벌이지! 해외 여행을 열심히 다니는게 글로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지난 생각이 부끄러워진다. 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일을 통해 두려움보다 용기가 커졌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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