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고 나니 하룻밤 사이에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라고 노래하는 사람은 평소에 꽃밭을 유심히 관찰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순식간에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사람도 그렇다. 그냥 자라나서 어느 날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과 돌봄이 중요하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 역시 하늘이 내려주신 큰 축복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또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인생길에서 수많은 스승을 만나게 된다. 스승은 선배나 연장자뿐 아니라 후배, 제자, 하물며 어린 손주까지 나이를 불문한다. 교사, 교수, 박사는 물론이고 선의를 간청하는 걸인의 눈빛에서,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권력자의 몰락 기사에서, 유명 스타의 비참한 종말에서도 우리는 가르침을 배우게 된다. 인생길에는 돈이나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렇게 스승은 좌우명으로 삼을 귀한 가르침, 직업에 꼭 필요한 지식과 기술, 삶을 살아가는 지혜,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의 경험까지 솔직하게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허망한 것을 좇지 말 것과 영생의 믿음, 구원의 은혜, 용서와 사랑의 가치를 설파하는 성직자, 욕심을 내려놓는 지혜를 가르치는 각 분야의 멘토 역시 훌륭한 스승이다. 탈무드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라고 가르친다.
스승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선 스승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어려운 이론도 자신이 완전히 소화해서 상대에 맞춰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각기 타고난 재능의 그릇이 다 다르다. 좀 부족한 제자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그가 성장하고 수준에 도달하도록 격려하고 기다려주는 인성이야말로 스승이 갖춰야 할 덕목일 것이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얻은 삶의 진액에서 우러난 지혜의 향기를 통해 무언의 가르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은 자신이 과연 좋은 스승인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자문한다. 새로운 이론, 급변하는 문명의 흐름, 보다 나은 지도방식에 대하여 탐문하고 그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스승의 일상이다.
스승은 늘 존경과 칭찬을 받는가?
사랑의 매를 들어야만 하는 순간이 있고, 오해로 떠나가는 제자의 뒷모습을 보게 되는 때도 있다. 지식은 많으나 너그러운 덕(德)이 부족한 제자를 보면서 안타깝고,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로 인해 괴로울 때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괴감에 속병이 든 존재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어찌 갈등과 어려움이 없겠는가? 많은 어려움과 굴곡을 지나 마침내 좋은 열매를 맺을 때, 세상은 청출어람의 바람직한 사제지간이라고 박수를 보낸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난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스승과 제자의 고난을 이겨낸 아름다운 꽃이고 진주이다. 스승이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모습까지 다 바쳐서 키워낸 작품이며, 제자에게는 풀무 불의 연단을 견뎌낸 정금 같은 열매이다.
성경에는 “아무나 스승이 되려 하지 말라.”고 한다. 스승은 말로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말과 그의 행실이 일치해야 실제로 제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르침으로 마음에 새겨지게 된다. 양초는 촛불을 크게 밝히기 위해서 자신은 점점 아래로 낮아지고 작아진다. 이것이 스승의 기쁨이다. 인생길은 높은 산봉우리를 정복하는 등정길이 아니라, 광야와 같은 순례길이라는 깨달음을 전해 주는 것이 스승의 길이다. 독수리는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절벽의 끝에서 새끼를 밀어 떨어뜨린다.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을 잘 견뎌내도록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스승의 모습이다.
의사는 환자의 스승인가?
환자는 질병과의 싸움에서 지식과 경험이 자신보다 많은 의사의 도움을 원한다. 스승으로 인정하는 출발점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환자를 위로하고, 질병에 관하여 친절하게 설명하고, 고통을 덜어주며, 일상으로의 회복을 곁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에 삶의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윤리적 스승이다. 그러나 윤리적인 소명이 생활인인 의사의 다양한 욕심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가끔은 윤리의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환자의 생명보다 의사의 이념이나 사상이 앞서고, 법적 분쟁이 판단을 위축시키고, 의료비가 치료행위를 제한, 방해하는 상황에 마주치기도 한다. 가난하거나 신체적 장애를 지닌 환자를 귀찮게 생각하고 차별하여 대하는 인간적인 허물이 드러나기도 한다.
진정한 위로자의 모습이냐, 아니면 의료 장사꾼이 되느냐의 경계는 좁은 낭떠러지 길이다.
승전가를 부르는 부하들에게 ‘메멘토 모리’를 외치는 로마의 장수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의사라고 환자들이 마냥 스승으로 존경하지는 않는다고, 늘 겸손하게 행동하라고...
나는 15명 정도의 구강악안면외과 의사들이 모이는 40년 이상 지속된 스승과 제자의 모임이 있다. 5월 스승의 날에 선후배가 모여 안부를 묻고, 애경사를 나누고, 같이 늙어가는 얘기로 수다를 떠는 ‘김종원 교수 문하생 모임’이다. 각자의 처지와 지위는 달라도 은사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나누며 흐뭇한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해마다 기다려지는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