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한모

2022.07.13 13:29:28

Relay Essay 제2509번째

용기가 없었다. 평범한 제자인 내가 교수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송공연이라는 큰 행사에서 감사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그로부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발표를 위해 적어둔 편지는 아직도 내 가방 속에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지는 마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나의 글을 볼 거라는 생각에 여전히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런 망설임보다는 교수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 그리고 그것을 너무 늦지 않게 표현하고 싶은 제자로서의 간절함이 훨씬 더 크다.

 

경희문 교수님,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교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도학생으로서 전공의 시절 동안 저는 교수님께 참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은 세미나에서든 식사 자리에서든 교정에 관련된 임상뿐 아니라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참 많은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교수님의 진료와 교정테크닉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원을 하고 보니 교수님께서 예전에 환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련의 시절 때 좀 더 정신 차리고 교수님 말씀을 새겨듣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더군요.

 

이런 저의 아쉬움을 아신 걸까요? 교수님은 의국을 나와 있는 제게 꾸준히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아마 2016년 여름인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문회에서 교수님의 부친상에 대한 단체 문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제자로서 예의를 표하였는데요. 며칠이 지나자 치과로 우편물이 하나 도착하였습니다. 봉투를 열어 보니 편지였는데요. 저는 그날 받은 편지를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글씨가 이상해서도 아니고 내용이 이상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몇 번을 쳐다봐도 프린트된 글씨가 아닌 교수님이 직접 쓰신 걸로 보였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귀찮게 이런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보아도 친필로 쓰신 조문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습니다. 교수님의 부친상에 조문을 표한 사람이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였을 텐데, 제자인 제게까지 이런 편지를 써주시다니.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저도 주변의 소중한 분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때 선물뿐 아니라 직접 적은 작은 메모라도 함께 전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교수님의 편지를 받고 느낀 감정에는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받으신 분들이 너무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은 귀찮음을 감내하면, 진심을 온전히 전달하고,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초였지요. 치과대학 소식지를 넘기다가 퇴임하시는 교수님의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개원을 생각하시다가 어떻게 교직에 들어서게 되었는지로 시작하는 내용이었는데요.

 

교수님, 혹시 글의 마지막 부분을 기억하십니까? 어쩌면 현직 교수님 자격으로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글에서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봉직할 동안 저 때문에 섭섭하신 교직원분들도 많이 계신 줄 압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합니다.’ 제 상식으로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가 더 적절한 마지막 멘트로 생각되는데, 교수님 같이 훌륭하신 분이 마지막 글의 마무리를 왜 저렇게 하셨을까 고민해보았습니다. 교수님이라면 본인의 행동이 정당하더라도, 의도하지 않게 상처 받은 분들이 있다면 기꺼이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합니다.’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잘못을 저질러도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제 자신부터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가족들이나 직원들에게 사과한 적이 있었는지.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러워졌습니다. 교수님 같은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아직은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교수님이 제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셨으니, 제가 이번에는 교수님께 사자성어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성형수술과 같은 미용시술을 받는 분들이 많은 요즘인데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시는 분들. 이 분들이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해 준 의사를 또 하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감사를 표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원래의 아버지 어머니와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해 준 아버지를 함께 부르는 말, 두 분의 아버지와 한 분의 어머니, 두부한모.

 

 

교수님은 제게 교정치료뿐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로써 그리고 더 중요한 행동으로써 알려주고 보여주셨습니다. 성형수술과 같은 단시간의 변화는 아니었지만, 마치 교정치료처럼 느려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저는 아주 많이 변화해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호부를 허락하지 않으셔도 저는 또 다른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끄러워서 표현을 못할 뿐,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제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제자로서 교수님의 업적뿐 아니라 인품을 정말이지 닮고 싶습니다. 스승은 자기를 넘어서는 제자를 보는 것이 제일 큰 기쁨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저는 이 편지를 통해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생 아니 다음 생에서도 저는 교수님께 그러한 기쁨을 절대로 드릴 수 없습니다. 대신 저는 제 능력의 범위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습니다. 교수님의 제자라는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교수님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교수님. 늘 건강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제가 얼굴 보고는 절대 부끄러워서 하지 못하는 말. 하지만 이번 생에 교수님께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은 말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교수님 아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권택건 대구가지런이치과교정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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