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질서와 소통

2022.08.10 13:57:09

시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화 중 하나는 위계질서이다. 위계질서의 사전적 의미는 관등이나 직책의 상하관계에서 마땅히 있어야 하는 차례와 순서로 풀이되며, 연공서열이란 말이 함께 연상된다. 다시 말해, 서열이 짬밥 순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이로 구분된 단체 돌봄과 의무교육, 그리고 대학과 군대, 회사 생활로 이어지는 조직문화에 노출된 우리는 위계질서와 연공서열을 당연하게 인식하는 한편, 남을 향한 위계질서를 강조하면서도, 본인을 향한 위계질서는 불편해한다.

 

위계나 서열은 강력한 규율이나 원칙에 의해 오직 하나의 기준으로 매겨졌을 때는 구성원들이 쉽게 동의하고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다양성과 개인주의가 존중되는 현대 사회에서 수직적 위계질서와 상명하복 문화는 오히려 조직의 소통과 성과를 저해할 거라는 건 이제는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1997년 괌에서 22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사고의 원인이 기장과 부기장 사이의 군대식 위계 문화와 우리 말의 복잡한 경어체계로 인한 소통의 문제임이 밝혀진 후, 대한항공은 민간 출신 조종사 비율을 늘리고, 영어 의사소통을 표준화하여, 항공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위계질서의 단면을 보여준 유명한 사례이다.

 

필자를 둘러싼 위계질서는 재수로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동갑내기 한 학번 선배들의 호칭을 항상 이름과 함께 OO선배라고 불렀기에 서로 어색한 관계가 지속됐으며, 나이가 많은 아래 학번 형누나들에겐 선배 대우와 후배 역할을 내심 기대했기에, 그들과의 관계도 그리 좋지 못했다. IMF 직후인, 99~02년은 군대나 사회생활을 경험한 입학생들이 유독 많았다. 이들은 나이가 학번보다 중요하다며 나사모(나이를 사랑하는 모임) 동아리를 만들어, 윗 학번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결국 필자는 학번과 나이 순서가 어긋나지 않은 선배-형과 후배-동생들과의 관계가 훨씬 편했다.

 

대학 졸업 후, 예방치과학 전공 전일제 조교 및 대학원생 기간에는 필자만이 유일한 치과의사라는 자만감으로 선배 조교이자 연장자인 치과위생사 동료들과 잦은 갈등을 유발했고, 연차가 쌓일수록 필자는 후배 조교들에게 경계의 대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자의 소속 교실의 조교 역시 연장자이며, 치의학전문대학원 전임강사 부임 후 첫번째 생활지도 담당학생의 나이는 필자보다 많았다. 그리고 연장자인 개원의 외부대학원생의 수업과 연구지도 역시 여간 관계의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필자의 이러한 인간관계의 불편함의 원인은 나이와 위계질서의 마음이 뿌리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나이를 묻고, 성별을 확인하고, 출신대학을 묻고, 직업과 직위을 묻고, 고향을 묻고 나서 시작되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나보다 서열이 높은지 낮은지를 판단하고, 상대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기대가 달라졌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위계질서, 연공서열의 마음은 결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위로는 해야 할 말들을 하질 못했고, 아래로는 들었어야 했을 말들을 듣지 못했다란 생각이 든다.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 서로 간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나의 마음 뿌리깊게 박힌 위계질서의 마음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나를 고립시킨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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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부산대 치전원 예방과사회치의학교실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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