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치과가 있는 골목에 새로 독립서점이 문을 열었다. 내 눈은 31가지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가게 옆을 지나가는 아이처럼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서점은 꽃으로 뒤덮인 세이렌들이 사는 안테모사 섬처럼 점심을 먹으러 나서는 길 중간쯤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엔 서점 유리창에 아이들이 크레용으로 그린 동그라미와 꽃, 사람, 헵타포드 외계인들과 교신이 가능할 법한 낙서와 같은 그림들이 눈에 띄었고, 다른 날엔 하얀색 커튼 너머로 젊은 엄마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오월의 햇살 아래를 꿈꾸듯 걷는 내게 ‘모락’이 달콤한 노래를 부르며 다가왔다. 그 자리에 이전에도 서점은 있었지만 내게 들어오라 말을 건넨 적은 없었다. 서점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 지른 선반에 다양한 제목의 동화책들이 키를 재듯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책들이 오밀조밀하게 포개져 전시돼 있었다. 창가에는 아기자기한 골판지로 만든 자동차 장난감과 아이들의 글을 모아 만든 작은 책들이 지나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곳에서 성인들을 위한 독서 모임 같은 게 열리나요?
아니요, 아직은 독서 모임은 따로 없습니다.
책방지기 선생님은 나의 얘길 듣고서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서점 오픈 한 지 얼만 안 된 분에게 괜한 부담을 지웠나 생각할 무렵 전화 연락이 왔다. 그간 몇 분이 독서 모임을 문의해왔고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독서 모임을 하기로 했으니, 네이버 카페에 올린 공지글에 참여 댓글을 달아달라는 전화였다.
원하던 바가 이루어졌는데 막상 나는 참여를 망설였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비대면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면서 나는 더 이상 예스24에서 책을 주문하지 않았고, 덤벨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는 15인치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릴 일도 없었다. 언제 내가 글을 쓰고 싶었나 싶은 정도로 문학에 대한 열정도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뭔가 수를 내야만 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얼굴에 열꽃이 피어오르고 기분 좋은 흥분으로 심장이 나대는 순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6월 9일 목요일, 나는 첫 책으로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를 들고 서점에 들어섰다. 첫 발표자로 나서, 다른 분도 발표해야 하니 짧게 해달란 말이 들릴 때까지, 혼자 열심히 떠들어댔다. 마치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아래 연기하는 배우 같았다.
책방지기 선생님은 ‘모락’이란 의미가 엄마의 품처럼 아늑해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나누는 공간이라고 자신의 책방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책방을 열고, 독립서점이라는 게 책을 팔아 이윤을 만드는 공간인데, 지나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들러 이곳이 뭐 하는 곳인가 물어올 때나, 전업 작가인 친구에게 어린아이들의 글을 모아서 내는 게 무슨 책을 내는 거냐는 서운한 말을 들었을 때가 기운 빠지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책방 모임이 좋은 점은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한다는 점이다.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생각하며 집중해서 읽고 그 책에 대한 온라인 리뷰 글을 검색해보고 나만의 독서 노트를 작성해본다. 눈으로 다 읽어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책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조리 있게 말해주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두 번째 유익한 이유는 각자 자신만의 안목으로 골라온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함께 대면하고 알아가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갓 결혼한 새댁이 소개한 장편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란 책 저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학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첫 모임에서 허브차를 마시고 화장실 갈 타이밍을 놓쳐 ‘참을 인’ 자를 새기다 부끄럽지만, 건물 밖 화장실에 달려갔을 때, 천둥 벼락이 치고 하늘에서 소낙비가 쉴 새 없이 유리창을 다그쳐 퇴근길을 걱정할 때도, 회원 중에 한 분이 포슬포슬하게 익힌 단짠단짠 하지감자를 가져와 맛있게 먹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모락’의 시간에는 영화가 막 시작되기 전 찰나의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설렘이 있다.
올리버 색스의 에세이집 《고맙습니다》의 〈나의 생애〉는 이런 문장을 들려준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나의 생애도 그러하기를, 부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생애도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