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

2022.10.12 12:34:15

스펙트럼

아침 햇살에 따듯함을 기대하면서 빼꼼히 창문을 열면 포근한 느낌보다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바람결에 성큼 들어옵니다. 일교차가 꽤 나서 몸이 웅크려질 지경입니다. 어느덧 올해가 9월도 마지막 주로 접어들어 바야흐로 가을의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30도를 훨씬 넘는 날들이 이어져서 꽤 무더웠고, 하늘이 찢어진 듯이 퍼부어대어 많은 침수 피해를 내었던 폭우, 그리고 연이어서 찾아온 태풍은 대비한다고는 했어도 많은 분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런 여러 가지로 힘겨웠던 여름이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니 어느덧 멀리 가버리고, 절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도록 하는, 아침, 저녁으로 결실의 계절 기운을 느끼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가까운 교외에서 코스모스의 여린 모습을 볼 수 있고, 산에라도 가면 오르내리는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겹겹이 낙옆이 쌓여서 걸을 때마다 나는 바스락 소리에 절로 시인의 감성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단풍은 곱게 물들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때론 붉게, 때론 노랗게 바꾸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찾아오는 봄이 앞으로에 대해서 생명의 시작과 설래임이 있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왠지 만남, 그리고 그 이후에 느껴질 그리움의 계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가을의 짙은 후반부가 되면서 추운 겨울맞이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될 것입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무척이나 높았습니다. 새털같은 구름들은 푸르름 속에서 흩어져 있었고, 옆 도로의 가로수들은 잎들이 떨어져서 많이 가벼워져 보였고 오가는 발걸음에 밟힌 은행알들도 보입니다. 병원문을 들어서면서 인사를 나누는 직원들(감사하게도 그들 중 한 분은 몇 개월 후면 함께 일한지 20년이 됩니다)에게 감사합니다. 올해도 지난 9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 진료와 병원 생활들이 꽤 다양하고 많았습니다. 진료를 하다가 가끔 쳐다본 창밖에는 바람에 나뭇가지의 나뭇잎들이 하나씩 떨어져 날아가고 있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 색들에서 시간을 느낍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했을텐데 이제 3개월여 남은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얼마나 이루었는지 아직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결실이 생기고 있을 것입니다. 매일의 일상이 계속 쌓여가면서 또 그렇게 지나갑니다.

 

퇴근하려고 문을 나서니 이제는 제법 주위가 어둑해져 있습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추분에 같아졌다가 이후에 점점 저녁과 밤의 시간이 많아지므로 짧아진 하루해를 체감합니다. 낮 동안 활동하다가 어둑해지면 석양으로 하늘이 노을로 물들며 조용한 풍경으로 변하면서 만남의 기대가 찾아옵니다. 한여름이면 여전히 무더울 시간이고 한겨울이면 몸을 움츠릴 시각일테지만 가을날의 밤은 낭만이 피어나기 쉽습니다. 가을밤은 시원하고, 분위기있고, 풍요롭고, 그윽해서 멋집니다. 그래서 그리운 사람들과 밀렸던 만남을 가져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소하면서도 진솔한 서로의 삶을 이야기 하겠지요. 이제는 듣기 쉽지는 않은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어느 시인의 시가 떠올라 찾아봅니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청명한 어느 가을날에 감상적이 되어서 낭만을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하루였습니다. 가을은 우리 모두를 그렇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의 바램처럼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시간을 가꾸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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