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정책과 감성정책: 탁상행정의 가치

2022.12.14 12:07:54

필자는 지난달 두바이에서 개최되었던 Pan Arab 근관치료학회에 참석하였다가 실로 오랜만에 전통적인 강의를 들었다. 전통적 주제이지만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하면서 우리나라의 보험 정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강의 주제는 아말감이었다. 아말감을 국제 학회에서 다룬다고? 아말감을 지금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고, 최근 미나마타협약 총회에서 다루어진 내용 때문에 그와 관련된 주제발표를 듣게 되었다.

 

최근 국내 학회에서도 치협을 통한 의견 조회를 받아보기도 하였지만 이제 아말감은 역사의 뒤로 완전히 넘어간 역사 속의 재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2022년 3월 제4차 미나마타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치과용 아말감의 절대적인 사용금지 규정을 명확히 한 듯하다. 그 주 내용은 두 가지이다. 치과의사가 대량 형태의 수은을 사용하는데 예외를 두거나 허용하지 않는다. 환자의 치료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15세 미만의 환자와 임산부 및 모유 수유 여성의 치과 치료에 아말감 사용에 예외를 두거나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명문 규정 하에서는 어떤 치과의사도 아말감의 선택을 주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5년 후 신경계 질환이 생겼을 때, 과거 아말감 치료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을 가족(가족도 원망할 지 모를 일이다)이 아니라면 누가 선뜻 아말감을 선택하겠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번에 들은 강의는 아말감 수복을 하는 내용이 아니라 아말감 제거에 관한 내용이었다. 금속성 재료인 아말감의 사용 후, 다수 치아에서 일어나는 미세파절이나 크렉에 의해 근관치료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수 있고 필연적으로 아말감을 제거하게 된다. 아말감의 제거과정에 일어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은 기화(vaporization)에 대한 우려와 이를 대응하는 보호장구와 진료 환경에 대한 강의 내용이었다.

 

요약하자면, 보호가운을 두 겹으로 입고 글러브도 두 겹으로 착용하고, 1급 방진마스크까지 착용한 후에 제거를 하여야 하며, 진료실의 수은 증기 확산을 막기 위해 ‘코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흡기 장치(Dental Vacuum Aerosol Suction)까지 활용을 하여 제거한다고 한다. 그! 렇! 게! 까! 지! 해야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급여에서 치관수복물의 제거 및 보철물 제거 간단(코드 1777)으로 정의된 항목은 1190원의 급여 비용이 책정되어 있다. 물론 땅파서 천원을 찾는거보다는 아말감 파내고 천원을 버는 일이 간단하다고 푸념하며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지구 반대편 학회에서 과연 정당한 책정인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정당하지 못하다. 강의 내용에서 들었던 것처럼 올바른 환경에서 아말감을 제거하려면 한국에서는 할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국보다 더 경제력이 낮고 의학기술이 후진적인 나라라고 생각하던 동남아시아 국가나 중동 국가들이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제대로된 진료수가를 보장받고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의학이나 치의학이 실용과학인 것처럼 의료계와 관련한 정책은 실용 정책이어야 한다. 실용 정책이라는 말은 실제 적용이 되는, 실제 적용에 무리가 없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당연히. 그러나 우리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보험은 실용적인가 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할 국민은 의료공급자이건 의료수혜자이건 불문하고 비실용이라는 쪽이 90%는 될 것이다.

 

직장 생활에 쫓기어 병원 구경도 못하고 아프면 적당히 약먹고 지내는 사람이 더 많고 정말 큰 병이 들어 수술을 앞두거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 앞에서마저도 그 실용성이 한없이 낮음을 겪어본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년간 수 백만원의 보험료를 내고도 병원 한 번 가지 않는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불행한 질환을 안타까운 사고를 당해 보험의 혜택이 필요할때 때로는 진정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보험 재정의 악화는 결국 방만한 정책과 운영이 원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병으로 얼마나 비용이 지출되고 어떤 진료가 어떤 재료와 기구를 사용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지 그에 맞는 정책이 필요한데,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의료행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정책을 개발(지금은 개발이 아니고 ‘짜맞추기’일 뿐이다)하면 실용성이 없을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자본주의를 바탕으로한 시장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가 화두이긴 한 시대이지만) 사회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통제된 단일화된 보험제도는 불균형과 불평등의 근원이 되어가고 있다. 환자의 선택권 보장을 높이고 의료비 비용을 줄이기 위한 (일부)목적으로 (대부분)폐지된 선택진료(특진)제도는 또다른 불균형을 초래하여 평등성을 침해하며 합리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진료 경력 1년 내외의 치과의사(전공의)나 경력 25년의 교수가 동일 진료 수가(이마저도 선진국 수가의 1/10이다)를 받으며 근관치료를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누가 과연 옳은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나 교수 진료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치관 수복물 또는 보철물의 간단 제거(코드1777)는 1190원이다. 라텍스 글러브 한 장과 일회용 방호가운 한 장만으로도 1190원이 넘어가는데, 인력이 투입되고 진료 재료와 장비를 사용하여 시간을 소진하는 아말감 제거를 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못할뿐만이 아니라, 시간을 잃고 비용을 잃는 진료를 과연 해야하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일반인 혹은 의료 수혜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래도 의사들은 많이 벌고 잘 살지 않는가….

 

얼마전 우연히 보게된 ‘인 타임'이라는 영화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시간을 화폐로 사용하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세상에 가장 객관적이고 공평한 것이 시간이라면 의료 수가도 그 시간과 재료 등에 비례하여야 하지 않을까.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소모하고 어쩌면 환자는 물론 술자의 건강도 위해로운 진료행위를 해야하는가.

 

오늘도 나라의 병원인 국립대 병원에서 적자폭을 키우는 아말감 제거를 하면서 환자와 의료인 모두 건강하고 공평할 수 있는 의료 정책을 기대해 보았다. 인기를 얻기위한, 표를 얻기 위한 감성 정책이 아닌 효율성을 높이면서 공평한 실용 정책이 필요하다. 책상에서 이루어진 정책 개발은 가치가 낮다. 매우!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현철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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