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ChatGPT가 전 세계적 화두입니다. 대학 교육에서도 이것을 사용해야 하는지 고민스럽습니다. 글을 다루는 의료윤리 및 의료인문학을 교육하는 사람에겐 이런 부분이 더 큰 고민으로 다가오리라고 짐작됩니다. 인공지능이 학생들 대신 글을 만들어 올 테니까요! ChatGPT의 의학교육에서의 활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익명

저는 ChatGPT에 대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의료인문학, 의료윤리 교육을 하는 저로선 많은 과제를 에세이 형태로 제출해 왔는데, 지금처럼 과제를 내면 말씀 주신 것처럼 많은 학생이 ChatGPT로 결과물을 만들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오랫동안 컴퓨터를 통한 텍스트 분석을 연구해 왔던 사람으로선 늦든 빠르든 벌어질 상황이었으며, 지금 필요한 일은 무조건 부정하는 것보단 받아들이고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학교 교육을 예로 말씀드렸습니다만, ChatGPT 관련하여 여러 생각을 하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자녀 교육이 한 예가 되겠지요. 치과에선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또한 고민하고 계신 분도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치과의사의 미래와 관련하여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예컨대 의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시나리오를 걱정하시지 싶기도 합니다.

나중 일은 놓아두고, 일단 당면 과제인 교육을 살펴보려 합니다. 교육에서 ChatGPT를 사용해야 할까요. 사용하는 것은 좋은 일일까요. 금지와 활용 모두 타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지 쪽에선 현재 우리가 기본으로 깔고 있는 교육 모형을 ChatGPT가 거스른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의학교육을 포함하여 우리의 일반적인 교육을 비판적 교육학자였던 파울로 프레이리는 은행예금식 교육이라고 불렀습니다. 간단히 말해, 교육이란 계속 쌓여 온 지식을 학생에게 예금하듯 쌓아 나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프레이리는 이런 교육 모형이 문제라고 말했지만, 그의 문제의식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그가 이름 붙인 은행예금식 교육은 현재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지요. 예컨대, 치과대학에서 교육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전문 지식이 쌓여져 있으며, 이것을 학년마다, 단계마다 학생들에게 차근차근 채워 나가는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에서 지식을 채우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과정은 지식의 검색과 정리입니다. 이전에는 도서관,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학생들은 필요한 지식을 찾아 모아서, 자신의 방식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중요한 지식의 탑을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ChatGPT가 끼어들면, 학생들은 검색과 정리를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하나하나 정보를 찾을 필요 없이, ChatGPT는 바로 질문의 답변을 정리해서 제공해주니까요. 말 그대로, ChatGPT 사용을 규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제 학생들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요식 행위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ChatGPT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도 가능할까요. 일단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고,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ChatGPT가 만들어낸 문장은 통계적으로 매우 “매끄러운” 문장입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이 쓴 문장은 들쭉날쭉한데 ChatGPT의 문장은 수학적으로 정돈된 문장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문장의 매끄러운 정도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해당 문장이 ChatGPT가 만든 것인지 인간이 쓴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미 직접 사용해보실 수 있는 GPTZero 서비스가 이런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긴 것인데요. 한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이 제출한 에세이를 GPTZero로 검사해 ChatGPT로 만든 것을 적발한 사례가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었지요. 물론,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을 것이라 무조건 서비스만 믿고 다 걸러낼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요.

반대로, ChatGPT를 교육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까요? 저도 이 부분을 이래저래 궁리해보다가, 직접 ChatGPT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온 답변은 이런 것이었어요. 자신이 학생들의 에세이 작성을 지원해줄 수 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에세이나 조사 자료를 심도 있게 검토하도록 유도하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다시 말하면, 학생들이 ChatGPT를 충분히 활용하여 수업 전에 에세이를 써 오면, 수업 시간은 그 내용들을 질문, 검토,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강의식 수업 방법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최근 주목받고 있는 플립 러닝(거꾸로 교실, 학생이 미리 공부해 온 내용을 수업 시간에 문제 풀이 학습으로 검토하는 교육 방식)의 약간 다른 판본이랄까요. 수긍할만한 답변이었고, 저도 한번 이런 형식으로 수업을 구성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교육 모형은 달라지겠지요. 지식의 예금 대신, 개인의 성찰을 중시하는 쪽으로.

제가 가르치고 있는 의료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의학 일반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의 내용을 학생 수준에서 설명해주고, 학생들에게 조 발표를 통해 배운 내용을 일반인에게 전달하는 자료를 만드는 수업을 운영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 의학의 특성이나 환자-의료인 관계를 설명해 준 다음, 학생들에게 관련 주제를 선정하여 일반인 대상 설명 자료를 만들어 보라고 하는 건데요. 이 수업에서 학생들이 설명 자료를 제작할 때 내용을 구성하고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내용을 다듬는 데에 ChatGPT를 활용할 수 있겠지요. 저는 발표를 검토, 평가할 때 발표 자료에서 학생들의 고민과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할 거고요.

사실 저도 사용료를 내고 ChatGPT 유료 버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답이 나올 수 있는지,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편, 의학을 포함하여 치의학에 어떤 기회와 도전을 주는지, 윤리학자로서 그 사용에 어떤 윤리적 문제나 위험성을 찾아낼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이 기술이 기회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활용할지, 우리 치과의사에게 어떤 부분에 도움이 될지를 찾아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직접 몸과 손을 사용해서 환자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는 치과의 특성상 직업적 안정성을 위협받을 일은 없겠지만, 지식의 활용이나 전달, 의사결정 등에선 여러 변화가 생길 것이 예상됩니다. 열심히 탐구해보고, 찾은 내용들이 있다면 여러 경로로 말씀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