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2023.05.26 15:18:14

Relay Essay 제2554번째

봄이 오면 마음에 바람이 분다. 따뜻해진 공기를 피부가 먼저 느끼는 것처럼.

생명이 움트는 기운에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봄은 으레 꽃구경으로 만족했지만 올해는 구경만 하고 여느 해처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남들은 애완동물도 키우는데, 나는 식물을 키워보고 싶었다. 가족들은 이왕이면 키워서 먹자고 한다. 잔인한 것 같지만, 지구에 생명이 있어 온 이래 우리가 사는 방식이 그러한 것 아닌가. 내 몸이 살기 위해 남을 먹어야 하는 삶.

 

채소 씨앗을 뿌려서 키우고 자라면 뜯어먹고 싶었지만,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는 과정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자원과 노력이 들여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풍기와 연탄난로로 따뜻하게 만든 비닐하우스에서 모판 안의 씨앗을 키우기란 내 노력과 열정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고 발아를 기다리는 것은 인큐베이터의 미숙아가 잘 자라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이리라. 큰아이와 둘째를 키울 때도 하지 못한 정성을 씨앗에게 베풀기란 어려웠다. 초보자는 모종을 사서 키우기로 결심했다.

 

처음은 검색창에 ‘모종’을 써넣는 것으로 시작했다. ‘상추’부터 시작해서 ‘방울토마토’, ‘딸기’를 거쳐 눈에 들어온 모종은 ‘고추’. 올해 베란다 농사는 상추와 고추로 정했다. 로메인 상추와 적상추, 아삭이 상추 모종을 장바구니에 골라 담고, 병충해가 적다는 고추 모종을 추가로 구매했다. 상추는 다 자라면 잎 나오는 대로 매일매일 한 장씩 뜯어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고추는 이래 봬도 다년생 나무라는 설명을 듣고 선택했다.

 

주문한 모종은 며칠 후 도착했다. 조그마한 모종들이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조심조심 신문지를 거둬내고 정말 아기 같은 상추와 고추 모종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반가워.

모종은 말이 없었다. 이파리도 흔들거리지 않았다.

 

화분에 옮겨 심은 상추 모종은 쑥쑥 자랐다. 너무 쑥쑥 자라서 줄기만 길쭉하니 커졌다. 길게만 자라 연약한 상추는 홀로 서 있지 못하고 쓰러졌다. 쓰러진 채 계속 자랐다. 상추 줄기는 땅을 더듬어 뻗었고 줄기 마디마디마다 앙상한 상추잎이 달렸다. 상추가 덩굴식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추는 진딧물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처음엔 잎이 말랐다. 그다음엔 꽃이 말랐다. 마른 잎과 꽃을 보고 나서야 자세히 관찰했다. 잎 뒷면에, 그리고 고추꽃에 연노랑 고름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진딧물이었다. 진딧물은 제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붙어 있었다. 원래 잎과 꽃의 한 부분인 것 같았다. 연한 잎과 꽃에 빨대를 꽂고 수액을 줄기차게 빨아들이니 움직일 틈이 없으리라. 잎이 마르고 꽃이 마르니 고추는 달릴 수 없었다. 2022년의 아파트 베란다 농사는 이렇게 끝났다.

 

겨우내 베란다는 방치되었다. 상추는 누렇게 말랐고 고추는 뿌리로부터 뻗은 줄기와 그 줄기에 매달린 시든 이파리들만 남았다. 물도 주지 않았다. 죽은 줄 알았다. 겨울은 추웠다.

여느 해처럼 연말을 맞았고, 새해를 보았다. SNS상으로 으레 하는 덕담을 건넸고, 실제 그럴 거라고 믿지는 않지만 자주 연락하자고도 했다. 12월 31일과 1월 1일 온라인상으로만 보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우애가 넘치는 곳이었다. 소파에 누워 엄지손가락으로 아름다운 말들을 쏟아내는 건너편으로 건조하고 비틀어진 식물이 누워있는 베란다 풍경은 기묘했다.

 

한차례 회오리 같은 덕담의 연말연시가 지나가면, 겨울은 원래처럼 차갑고 건조한 시간이었다. 가끔 술집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지만 예전처럼 잔을 한입에 털어 넣지도 못했고 조금씩 조금씩 홀짝거리기만 했다. 이제는 숙취로 골골거릴 내일이 두려운 나이가 되었다. 나이 듦을 토로할 친구가 있지만 각자 가슴 속 묻어놓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시 봄이 왔다, 차가운 칼바람에서 살랑살랑 봄바람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바람은 그친지 오래였다. 마음은 메말랐으나 몸은 옛 습관에 이끌려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줄기만 남은 고추 화분에도 삼시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습관처럼 물을 주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매 끼니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일까? 육식동물처럼 일주일에 한 번 배터지게 먹고 다음 일주일간 안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을 끊임없이 먹어대는 내 자신이 가끔은 기괴해 보였다. 하지만 그때뿐. 끼니를 굶어도 보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여전히 먹고 쌌다. 그런 습관 때문인지 고추 화분에도 습관처럼 물을 줬다.

 

 

정말 봄이 왔다. 기온도 제법 올랐고,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올라왔다. 마른 고추 줄기에도 무언가 뾰족뾰족 머리를 내밀었다. 시간이 지나니 뾰족한 머리는 점점 커져 이파리가 되었다.

 

죽은 지 사 개월만에 잎을 피운 고추나무를 본 놀라움이 나흘 만에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나사로를 본 사람들의 충격과 같았다. 자연이란 놀랍지 않은가. 부활이란 이런 것일까? 내 마음도 다시 살아오는 것 같았다.

 

여전히 고추 이파리는 너무 작다.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답은 없겠지만 희망이라는 것,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안녕? 반가워.

한동헌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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