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을 마주하다

  • 등록 2023.08.30 17: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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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본격적으로 원내생으로 업그레이드 된 지 2개월 정도가 지나가는 시점이다. 원내생인 우리는 단순히 어시스트를 하는 역할을 넘어서 ‘student dentist’로서 조금씩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아직 치과의사 면허도 없는 원내생일 뿐이지만, 진료의의 자리에 앉아 치료를 하고 있는 모습에 괜시리 책임감을 느낀다. 다가오는 9월 1일에는 발치가 예약되어 있다. 발치 어시스트가 아닌, 진료의로서 내가 사랑니 발치를 하는 것 말이다. 이제 진짜 임상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임상을 마주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마음이 힘든 것 같다. 교과서로 배우고 1, 2학년 실습 때 했던 것들은 쉽게 해냈던 것 같은데 그걸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실습 모델은 “얼추” 모양새만 갖춰도 됐겠지만, 임상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그 차이가 너무 커서 부담도 두 배가 된다.

 

내 첫 임상 경험은 원내생진료센터의 한 환자분이었다. 내 지인이 아닌, 초면의 환자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기려나, “진짜 환자”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 전날 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자기 전 환자분을 맞이하고 진료가 끝나서 귀가시켜드리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봤다. 환자가 너무 무서우면 어쩌지, 서툰 모습에 다시 안 온다하시면 어쩌지, 친구들 좀 더 빨리 불러서 연습 좀 할걸… 수많은 걱정을 안고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환자는 10시에 내원하기로 되어있었는데 나는 8시 30분에 먼저 가서 준비를 하고 머릿속으로는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리고 환자분을 만나고, 진료가 시작되었다. 별 것 없는 과정이었다. 차팅을 했고 동의서를 받았고 스케일링을 진행했다. 이 모든 게 처음처럼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진료가 끝나고 환자는 체어에서 내려왔고, 모든 단계가 별 탈 없이 끝났다. 특별할 것도 없었던 지라 걱정으로 지새운 지난 밤이 우스워질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인게 티가 났을까, 그것 때문에 환자분이 불쾌하진 않았을까 얼마나 맘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환자분은 나를 매 순간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며 너무도 잘 따라주셨다. 그리고 내 말을 믿어주셨다. 처음 보는 누군가가 내 말을 이렇게 깊이 듣고 믿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묘했는지 모른다. 떠나실 때 환하게 웃으시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내가 더 감사할만큼 그 자체만으로 너무도 큰 위로와 안도가 되었다.

 

진료지에서 있다 보면 결국 제일 큰 보람과 힘이 되는 것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제일 큰 실망과 속상함이 되는 것 또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서야 예전에 선배님들이 책을 많이 읽으라셨던 말씀이 조금씩 와닿기 시작한다. 임상에서 “관계”의 비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큰 것 같기에 책을 통해 사람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원내생에서 더 업그레이드가 된다면, 그때 가장 큰 변화는 “판단”이 될거다. 지금은 “실행” 단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이지만 “판단”의 어려움은 또 얼마나 큰 벽으로 다가올지 벌써 마음이 무겁다. 자신의 결정에 의해 온전히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쉬운 판단도 어렵게 만들 것이다. 평생을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들어온 나에게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려울지 감히 예상도 못하겠다. 저녁 메뉴도 잘 못 정하는데 환자의 상태를 판단하고 치료를 결정해야 한다니 말이다.

 

앞으로 남은 임상의 길이 너무나도 멀어서 아득하기만 하다. 모든 순간에 선생님들, 교수님들 그리고 선배님들이 도움을 주시겠지만 온전히 책임지고 나아가야 할 것은 나 스스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훌륭한 임상가가 되는 과정이 내 생각보다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떡하나, 하는 수밖에 없지. 모든 과정들이 내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원내생 생활에 집중해봐야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예슬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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