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고무신

  • 등록 2024.02.06 17: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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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냇가에서 고무신 배 띄우기 놀이하던 추억의 검정 고무신, 필자의 어린 시절엔 다수가 말표(상품명) 검정 고무신을 신었으며 여자신발은 고무신 모서리 부분에 촌스런 꽃무늬가 그려져서 구분되었다. 형편이 조금 나으면 흰색 고무신을 신었으며 그 중 부잣집 아이들은 운동화를 신기도 했고 부러워한 기억이 난다. 검정 고무신이여도 처음 신을 땐 발이 좀 아팠지만 새 신이어서 기분은 좋았다. 좀 신다보면 발이 적응하여 편해졌으며 사시사철 검정 고무신이여서 겨울에는 지면과 맞닿아 유독 발이 시렸고 동상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겨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교장 훈시 들을 때 발을 동동 굴렸던 기억들을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며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주로 맨발로 다녔기에 신발이 닳아 바닥이 얇아지면 지면에 닿는 가려움과 마찰에 의한 따가움이 합쳐져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결국 신발에 구멍이 날 때까지 신다가 새 신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들… 오래 신으면 늘어나기도 하고 구멍도 나서 달리다가 잘 벗겨지고 발바닥이 까지기도 했다.

 

필자는 전교생이 상당히 많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신발장이 초등학교 교실 복도에 있었는데 검정 고무신이 너무 많아 바뀌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했다. 실내화도 없이 학급청소 때 교실 마루 바닥을 초칠해가며 맨발로 다니기 일쑤였다. 한 학급이 70여명, 한 학년 8반, 요즘에 비교하면 굉장한 숫자다. 한 반이 시골 전교생 수보다 많았으니 항상 북적북적 콩나물 시루였다. 그렇게 많은 수였으니 필자도 신발 한 짝 잊어버려 애 먹은 적도 있었다. 바뀌었는지 누가 가져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슷한 신발이 너무 많아 한 짝 잃어버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원래 한 짝과 구석에 돌아다니는 여자 헌 고무신 한 짝과 짝 맞추어 신으면서 부모님께 혼나며 짧은 기간이나마 새 신 사 줄 때까지 부끄러워도 맞지도 않는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다. 그렇게 생활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 모두가 살기가 나아졌는지 유명 메이커는 아니지만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다니게 되어 검정 고무신의 기억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 때의 맨발 기억 때문인지 요즘에 비록 시골이어서 농사짓다가 급히 치과치료 받으러 맨발로 오시는 분도 계시지만 맨발에 슬리퍼 신고 잠옷 같은 실내복 차림의 환자를 볼 때면 다소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게다가 양치도 하지 않고 몇날 며칠 틀니를 씻지도 않고 틀니 손 봐달라는 환자를 대하는 게 다반사다. 비록 시골이라 만성이 되어 예사로 생각하지만 환자 스스로도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소한 치과에서라도 양치실에서 양치하든지 틀니라도 씻어오면 좋으련만….
 

본론으로 돌아와 검정 고무신을 늘 신고 다녔던 그 시절 그 추억… 요즘이야 세상이 좋아져 고급 신발 중에서도 실용성보다도 유명 메이커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아 씁쓰레한 기분도 든다. 발이 편해야 피로도 덜 느끼고 잠자리도 편해지는데 필요 이상의 굽 높은 신발을 신으면서 발 건강뿐 아니라 무릎관절과 척추에도 무리가 가서 애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전 오로지 검정 고무신 하나로 사시사철 겪었던 시절, 특별히 더 추웠던 겨울도 아니었는데 유난히 발 시렸던 때를 생각하며 요즘처럼 잘 닳지 않고 통풍도 잘 되고 편한 운동화가 새롭다. 유행이란 게 무섭다. 닳아서 못 신는 게 아니라 싫증나서 버리는 요즘 세대가 자연스러운 것인지 내가 시대에 동떨어져 사는 건지 오히려 혼동이 된다.

최근에 딸아이로부터 발이 너무 편하다며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 받았다. 마라톤을 즐기는 필자이기에 너무 기뻤다. 아까워서 달릴 때 닳을까봐 외출할 때나 걸을 때만 신는다. 짚신장수 헌신 신는다는 속담처럼 지나치게 아끼는 모습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신발에 얽힌 옛 추억 때문에 유독 신발은 아껴 신는 편이다. 오늘도 편한 운동화로 둔치 길을 산책하고 돌아오니 괜히 기분이 좋다. 새 신이어서 그런가? 새 신 신고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의 모습처럼 나도 그 기분 느껴본다.

 


검정 고무신

 

사시사철 검정 고무신
벗겨질까봐
바통처럼 양 손에 쥐고 뛴다
닳아 구멍 날 때까지 

 

맨발의 검정 고무신에서 
가볍고 편한 운동화로
낡고 닳아서가 아니라
싫증나서 눈밖에

 

흘러간 흙발 검정 고무신 
동심으로 돌아가
종이배 띄우 듯 고무신 들어
하늘 높이 날려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광렬 이광렬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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