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넘치는 의사

2024.06.19 14:23:38

릴레이 수필 제2610번째

어느 월요일 아침, 치과에 출근했더니 50대 여성 환자가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일반적으로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치과에 오시는 분들은 주말에 큰 불편함을 겪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디가 불편하셨냐고 환자분께 물었더니, 앞니에 때워 놓은 수복물이 빠져서 주말 내내 곤란함을 겪었다고 하셨다. 검진을 했더니, 위 앞니 사이를 수복했던 재료가 완전히 탈락한 상태였다. 나는 환자분에게 다시 때워야 한다고 설명을 드리면서 혹시나 또 떨어지면 치아를 완전히 씌워야 할 수도 있다고 강조하였다. 순조롭게 치료가 끝난 후 환자분은 다시 예쁘게 때워진 앞니를 거울로 감상하며 말했다.

 

“아유, 이제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겠네요.”
“주말 내내 외출도 못 하시고, 많이 불편하셨죠?”
“말도 마세요. 사실 제가 이 앞니를……”

 

환자분은 환하게 웃으면서 이제야 말문이 트였다는 듯, 자신의 앞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어렸을 때 생겼던 앞니 사이 충치 때문에 치과에 주기적으로 다녔다는 그분은 3~4개월 전에 앞니의 수복물이 완전히 떨어져서 치과에 갔었다고 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방문한 치과였는데 원장님의 호탕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이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 원장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지금까지 수만 명의 환자를 봤는데, 때운 게 빠지거나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라고 하셨거든요. 사실 저도 치과를 오래 다녀봐서 그 말씀 자체는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원장님의 자신감이 대단하셔서 존경심과 신뢰가 이렇게 갑자기 생기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좋아 보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치료받은 앞니의 수복물이 3~4개월 만에 떨어진 것이었다. 이 환자분은 화가 나지는 않았을까? 왜 그 치과에 다시 가보지 않고 우리 치과에 오셨을까? 이어지는 환자분의 말씀이 조금 놀라웠다.


“토요일 저녁에 외식하는 도중에 갑자기 떨어져서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화가 나서 따지고 싶다기보다는 그 원장님이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더라고요. 되레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래서 거기에 다시 안 간 거예요. 저 완전 호구 같지요?”


환자분은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진료용 체어에서 내려왔다. 나도 웃으면서 농담을 보탰다.


“그 원장님은 OOO님 같은 환자만 보신 게 아닐까요? 수복물이 떨어져도 다시 가지를 않으니 떨어진 환자가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계시는 거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고요.”


그랬더니 환자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훈훈하게 진료를 마무리하고 원장실에 들어왔는데, 몇 년 전 직접 겪었던 일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내가 개원을 하기 몇 년 전 페이닥터를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근무했던 치과와 같은 층에 작은 피부과가 있었다. 그 피부과 원장님이 나에게 치과 진료를 받으면서 안면을 트게 되었는데 그 원장님이 나에게 먼저 피부과 진료를 권했다. 당시 내 얼굴에는 약간의 여드름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피부과 원장님의 눈에는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그 원장님은 매너가 좋으면서도 자신의 진료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 ‘자신감’이라는 것에 나도 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내 그 피부과에서 몇 차례의 레이저 시술을 받게 되었다. 시술 직후에는 시술 흔적과 딱지를 가리기 위해 비비크림을 바르고 다녔지만 몇 주 뒤의 상태는 놀랍게도 시술 전과 완전히 동일했다. 효과가 전혀 없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반응이었다.

 

 그 만족스럽지 않은 시술 결과에 대해 딱히 불만은 없다. 레이저 시술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정작 불편해진 것은 나의 출근길이었다. 그 피부과 원장님과 나의 출근 시간이 비슷해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인사를 하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셨기 때문이었다. 그분도 내게 별다른 말씀은 없었지만, 속으로는 ‘이런, 결과가 좋지는 않네’ 정도로는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피부과 원장님들은 이런 점이 괴로울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만 잠깐 만나도 결과를 알 수 있을 테니. 하여간에 내 자신이 누군가의 ‘실패 케이스’가 된다는 것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망설여질 정도였다.

 

지금도 가끔 치과의사 경영 세미나를 가면 ‘의사의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의를 듣곤 한다. 의사가 자신감이 넘치면 당연하게도 환자가 따른다. 자신의 행위에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 얼마나 매력적인가? 내원하는 환자 수가 증가하니 당연히 병원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자신감 있는 의사의 강점은 사실 한 가지가 더 있는 셈이다. 바로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자신감 넘치는 사람에게는 아쉬운 소리를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는 자신감 넘치는 치과의사일까? 안타깝게도 아닌 쪽에 가깝다. 나름 내면에 자신감은 있지만 그다지 넘쳐흐르지는 않는다. 더구나 내 입으로는 절대로 스스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고 환자들이 먼저 칭찬해 주셔도 괜히 민망해서 못 듣고 있는 성격이다. 이런 성격은 단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요즘에도 진료를 마치면서 ‘정말 치료가 잘 되었다, 너무 예쁘다’라는 말 대신에 ‘불편하면 다시 오시라’는 말씀을 드린다. 아직은 과장된 결과에 심취하기 보다는 담백한 진실에 직면하고 싶다.
 

정유란 모두애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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