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며 잃은 것들

2024.06.19 14:36:16

스펙트럼

“쉬는 날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냐”고 물으면, “쉬는 날이면 달리기 선생님한테 달리기를 배운다”고 대답하고. 다시 “아니 달리기를 돈 내고 배워?”라고 반문하면, 순간 머리 속에 ‘뭔가 남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을 하며 돈을 잃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대꾸하게 된다. 작년 11월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생각보다 아주 많이 힘들었고, 기대했던 것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행복했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건강해졌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고, 큰 고민과 함께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렇게 오래 뛸 생각이 없었다. 달리며 잃은 여러 가지를 반추해 본다.

 

하루 중 이런저런 생각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충실하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머리 속에 여러 생각들이 가득할 때, 그리고 그 생각들이 덜어내어 지지 않을 때, 달리기를 통해 그 많은 생각들을 잃을 수 있다. 어느 순간 삶에서 몰입하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여 삶의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때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생긴 여러 문제들이 머리 속을 채워 문득문득 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 바로 그 때가 달리기를 시작하기 제일 좋은 때이다. 숨이 가빠지는 경험을 하고 다리가 올라가지 않는 경험을 하며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가장 몰입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 제일 힘들 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고 나 자신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었다.

 

첫 번째 풀코스를 뛰고 나서 다음부터는 조금 더 잘 준비하고 뛰어보고 싶다는 욕심에 지난 겨울 새벽에는 달리기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일요일 단체레슨에도 참석하며 뜨거운 겨울을 보냈다. 놀랍게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100여명이 그 추운 날씨에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이색적인 경관에 함께 할 수 있었다. 항상 뛰다 보면 뒤쳐져 선두그룹과 멀어지는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나이를 잊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나이를 잃을 수 있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더 잘 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이가 많다고 못 뛰는 것도 아니었다. 쏟아낸 에너지에 걸맞은 성과를 얻는 것이 마라톤이라는 귀한 교훈을, 그리고 더불어 달리기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라는 것도 덤으로 얻게 되었다.  

 

42.195km를 뛰는 과정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지지 않는 마음’을 얻게 되는 동적인 수양의 시간이다. 상대적으로 경쟁해서 ‘이기려는 마음’ 그리고 ‘승리하려는 마음’을 내려 놓게 된다. 시작할 때는 긴장된 마음으로 더 큰 목표를 갖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겸손해져 결국 지지 않고 버텨 끝까지 목표점에만 다다르자는 수양을 하게 된다. 결국 나 자신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며 동시에 부족함에 머리 숙일 수 있는 시간으로 귀결된다. 아무도 지지 않기에 완주하는 그 순간 모두가 지지 않고 승리하는 소중한 경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승점에 다가오며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는 완주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다.    

 

당연히 달리기를 하며 많은 몸무게를 잃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달리기는 몸무게가 중요한 상수가 되는 운동이다. 빨리 달리고 싶으면 빨리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결국 살을 빼야 잘 달릴 수 있고 잘 달리면 또 살이 빠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사실 이 과정이 개인적으로 많이 쉽지는 않았다. 조금 살을 많이 빼고 대회에 임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는데 막상 원하는 몸무게를 갖고 대회에 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머리 속에 염두에 두다 보면 당연히 몸무게의 변화를 살피게 되고,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대부분의 성인병들이 몸무게와 연관되다 보니 건강한 일상은 당연히 함께하기 마련이다.

 

달리기에 심취하다 보니 쉽게 구하지 못하는 러닝화를 구하기 위해 토요일 아침 와이프를 매장에 줄 세우기 시키기도 하고, 미국으로 연수 가 있는 수련동기 교수에게 운동화 구매를 부탁하기도 하여 새로운 러닝화로 얻게 되는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기도 한다. 누가 달리기는 돈이 안 들어가는 운동이라고 하였던가. 햇빛을 가려주는 멋진 선글라스도 있어야 하고, 땀도 배출 잘 하고 가벼운 메리야스인 싱글렛도 사야 하고, 이것저것 사다 보면 택배상자가 현관에 쌓이기 마련이다. 물론 밑창이 헤어진 운동화에 면바지 입고도 훨씬 잘 뛰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아내의 핀잔도 일상이긴 하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ability가 아니라 attitude!’이지 않은가. 마라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선수처럼 뛸 수 있는 능력은 없어도 선수처럼 입을 수 있는 자신감은 있어야지.

 

오늘밤 퇴근 후에는 아무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뛰어보시길 권한다. 숨이 차거나 무릎이 아프면 슬슬 걸으면 된다. 숨이 차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무릎 등등이 아픈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제발 무릎이 아플까 봐 발목이 아플까 봐 라며 이런저런 핑계로 기회를 놓치지는 마시기 바란다. 어느 날 10km를 뛸 수 있으면 조만간 풀코스도 뛸 수 있다. 어차피 힘든 건 매한가지다. 거리가 늘어난다고 그 힘듦이 비례해서 내 몸을 감싸는 것은 아니다. 그냥 힘든 건 똑같다. 다만 조금 더 많은 것들은 잃을 수 있을 뿐.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석 대한치과교정학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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