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한 청와대 만찬에서 박효신은 자작곡 <야생화>를 불렀는데(2017. 11. 07.), 이것을 라이브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부안 해변을 배경으로 가슴 치는 감성을 ‘소울’로 풀어낸, 반 흑백 뮤직비디오의 감흥이 여지없이 깨어졌을 테니까. 그러나 필자가 울적할 때면 몇 번이고 다시 듣는 야생화는 복면가왕에서 팝콘 소녀 알리가 부른 노래다(2016. 11. 06.). 왜냐고 묻기 전에 한 번 들어보시라. 한밭수목원을 산책할 때도 야생화원(花園)에 한참씩 쪼그리고 앉아 머물다 온다. 그저 지나칠 때는 볼품없는 꽃이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기화요초다. <꽃의 예찬>이라는 글에서 한남대 최영근 교수의 옻과 자개와 난각(卵殼) 공예품 넉 점을 소개한 바 있다(2013. 03. 20.). 8호가 채 안 되는 봉선화ㆍ민들레ㆍ맨드라미ㆍ할미꽃의 정밀화 소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시립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어떤 대작보다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보릿고개를 막 넘어선 70년대 후반, 먹고살 만해진 중상위층에 사치 바람이 불었다. 마님 방 문턱 너머 힐끗 보이던 화려한 자개장……
그 DNA를 대물림했는지 당시 천만 원 대의 대형 나전칠기 자개장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십 년쯤 지나니 문갑ㆍ사방탁자ㆍ삼층장ㆍ이불장의 매출이 뚝뚝 떨어진다.
첫째 살만한 사람들은 다 샀다. 기본적으로 돈이 많고 안방도 거실도 넓어야 하니까. 둘째 갑자기 아파트가 늘었다. 붙박이장이 딸려 있고 생활방식은 입식이 되었다. 셋째 악취 나고 피부에 안 좋은 옻칠과 장시간의 정밀하고 고된 상감(象嵌: Inlay) 작업에 종사할 인력이 달린다. 넷째 이 틈새를 노리고 값싼 멕시코산 자개에 화학제품을 쓰는 조악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명당이 임진왜란을 마무리하려고 도쿠가와를 만나 잡혀간 조선인 3,500명을 데려올 때(1604), 많은 도공(陶工)이 따라오지 않았다. 인간 이하의 대접에 착취만 당하다가 일본에 끌려와 비로소 전문기술을 인정받지 않았던가. 조선조 사회의 기술자들은 자신의 천직에 긍지를 가지고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는 고사하고, 대부분 그저 어깨너머로 배워 답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숙련공이 쉽게 흉내 낸 저질 대량생산제품이 홍수를 이루면서, 자개장의 인기가 급격하게 추락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같은 이유로 장차 ‘대형가구의 유행’이나 ‘생산단지의 성공 가능성’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나전칠기 장인(匠人)이 남긴 훌륭한 작품은 고가구(Antique)나 문화유산으로서의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 다만 그 기술은 장식품(PendantㆍBroochㆍ String-tie)이나 소가구(보석함ㆍMusic Box) 등 고가의 고품위 상품으로 육성하고, 나아가 최 교수의 작품처럼 작가의 혼이 담긴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국제화함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
조준경 한 클릭에 탄착지점이 크게 벌어지듯, 어떤 프로젝트든 구상할 때의 선의 여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반드시 뜬다”며 주변 인물을 동원해 집을 사고 월급 360만 원 들인 작품을 ‘예술품’ 값으로 팔며, “지역구 국회의원과 사전협의 없이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했다.”는 호통을 들으니 머리가 지끈한다. 왠지 투기ㆍ착취ㆍ국정운영 감시자가 아니라 군림하는 허가권자, 이런 낱말들이 어른거린다.
병역특례 문제도 그렇다.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수호하기 위하여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봉직하는 직업군인은 국민 모두가 아끼고 존경해야 할 전문직 중의 전문인이다. 명예를 먹고 사는 현역 장성의 손에 수갑을 채워 끌고 가는 일은 인간을 껌처럼 쓰고 버리는 착취행위에 버금간다. 잘 모르면 선진국 흉내라도 내보자. 군 복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세상이 오면 병역특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임철중 치협 전 의장
-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 치문회 회원
-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역임
-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 저서 : 영한시집《짝사랑》, 칼럼집《오늘부터 봄》《거품의 미학》《I.O.U》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