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반포는 저의 첫 개원지입니다. 구반포는 전체가 주공아파트 단지였습니다. 참 오래된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저는 아파트 상가 건물에 치과를 차렸는데 제가 치과를 열었을 때 건물의 나이가 이미 30살이 넘은 상태였습니다. 지금의 구반포는 재건축에 들어가, 제가 세 들어 있던 건물은 다 허물어졌고 새 아파트 건축 공사가 한창입니다.
치과를 운영하면서 구반포의 특별한 면모를 몇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멈춘 듯한 옛날 동네, 오래된 동네답게 주민들 간에 유대감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지식 수준이 높았습니다. 건강을 위한 지출에 인색하지 않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복날이 되면 삼계탕 가게에서 열 개도 넘게 파라솔을 늘어놓고 삼계탕을 팔았습니다. 복날만큼은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에 파라솔을 설치해도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삼계탕을 파는 분도, 삼계탕을 드시는 분도 아무렇지 않았고, 동네 자체가 그 상황을 즐기는 듯 했습니다. 제가 그 동네에 들어가서 9년 동안 치과를 했는데 매년 그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동네 잔치 같은 그 모습이 시작된 때는, 민원 같은 것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카센터 사장님은 아파트 주차장을 자기 마당처럼 사용했습니다. 손님이 차를 맡기고 가시면 카센터 앞의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줄지어 세워놓고 차를 수리하시곤 했습니다. 구반포 주공아파트 주차장에는 차단기가 없었고 마당에 그어진 하얀 선과 숫자가 전부였습니다. 사장님은 수리가 다 되면 손님의 동호수 주차장에 차를 갖다 주시곤 하셨습니다. 사장님이 킥보드를 타고 단지 내를 누빌 때도 있으셨는데, 아마도 손님의 콜을 받고 차를 체크하러 가시거나 차를 가지러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민의 상당수가 손님이었으니 아파트 주차장을 다소 사용하더라도 양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 세상 같으면 금방 민원이 들어갈 일인데 구반포에서는 그런 일들이 별 문제없이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네에 질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구반포는 매사 의식 수준이 높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동네였습니다. 다만, 요즘에는 보기 드물게, 가게와 주민들 간의 유대관계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불과 5년 전의 일입니다.
치과에서도 좋은 유대관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동네가 알음알음 이웃 분위기여서 한 분 잘 치료해드리면 소개로 이웃 분, 친척 분이 속속 내원하시곤 했습니다. 오히려 마케팅이 효과가 너무 없어서 초반에 신환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젊은 치과의사가 있다고 해서 와 봤다는 분, 소개팅을 주선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 체계적이다, 참신하다, 사이좋은 동네, 보기 드문 신참 개원의에 대한 예상치 못한 평에 당황스러워한 일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들어가면 맛집이라고 할 정도로 동네에 맛집이 많았고, 퀄리티가 낮아서 망하는 가게는 있어도 비싸서 망하는 가게는 없었습니다. 프랜차이즈 제의를 몇 번이나 받았지만, 고사하시고 자기 가게에만 전력하셨던 떡볶이집 사장님, 당시로서는 높은 가격, 만원을 훌쩍 넘는 제육볶음으로 한식의 고급화에 앞장서셨던 밥집 사장님, 유입되는 인구가 없는데도, 고급 중식당 요리로 구성된 메뉴로 승부 보시고 잘되셨던 중국요리집 사장님. 지금은 다 흩어졌지만 재건축이 끝나면 구반포에 다시 모일 거라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저의 마음에 옛날의 구반포를 위한 한 자리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의 구반포는, 이제는 구반포가 아니라 ‘그 반포’입니다. 누구도 무슨 수를 써도 ‘그 반포’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새롭게 형성될, 구반포로 다시 돌아갈 거냐고 물으시는 환자분들이 계십니다. 세를 내줄 테니 들어오라 하시는, 구반포 상가 건물주이신 환자분도 계십니다. 너무나 감사한, 귀한 분들입니다. 그 분들 덕분에, 제 마음 한 켠에 있는 ‘그 반포’의 빈 자리가 조금은 채워진 것 같습니다.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못 했던 저를 돌아보며 왜 그랬는지 생각해봅니다. 저를 망설이게 했던 것은 지금 제가 있는 이 자리였을까요? 아니면, ‘그 반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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