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의학, 좌충우돌 속에서 발견한 길

  • 등록 2025.03.26 17: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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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제2648번째

2010년 한국에 막 소개된 열린 시스템의 구강스캐너 iTero 앞에 선 나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당시 아날로그 인상 채득에 익숙했던 내 손은 스캐너 렌즈 앞에서 어색하게 떨렸다. “이게 과연 임상에서 통할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서툰 실력으로 수 차례의 실패 영상 얻기를 거듭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스캔이 완성된 후, 컴퓨터 화면에 완성된 3D 모델을 보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 작은 기계가 치의학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해 가을 대전에서 열린 대한치과보철학회 학술대회에서의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구강스캐너를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느낀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임상 현장에서 디지털 워크플로우를 직접 구축하기 시작했다. CAD-CAM 설계와 3D 프린팅 보철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오차 하나하나가 환자 치료 결과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밤새 문헌을 뒤지고 실험을 반복했다. 실패는 수없이 많았지만, 그 과정이 쌓여 임상시험 설계로 이어졌고, 구강스캐너 정확도 검증과 세라믹 3D 프린팅 소재 평가 결과를 SCI급 저널에 발표하는 성과를 이루어냈으며 ‘디지털 치과 전도사’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표준화와 협력이 필수적임을 절감했다. 이에 2017년부터 치과 ISO/TC 106 SC-9 디지털 분야 소위원회의 WG 3(구강스캐너)와 WG 7(3D 프린터)에서 프로젝트 리더이자 Secretary로 참여하며, 참여 국가 간 interlaboratory test를 기획·운영했다. 서로 다른 실험 조건과 평가 지표로 발생하는 혼선을 조율하고, 각국 전문가들의 의견이 상충할 때마다 설득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여러 번 좌절을 맛보게 했지만, 이를 통해 국제 공인 시험 방법이 마련되었다. 표준화된 절차와 기준은 디지털 장비의 신뢰성을 높이고, 임상가들이 새로운 기술의 이점을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국제치과연구학회(IADR) Digital Dentistry Research Network에서 차기회장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 디지털치의학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동 연구 기회를 마련한 일도 내게 큰 의미였다. 미국, 브라질, 스위스, 홍콩, 서울 등에 있는 네트워크 이사진이 회의와 학술 행사 때문에 새벽에 화상 회의에 접속하거나, 영어로 회의를 하며 밤을 지새운 경험은 도전이자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연구자들이 함께 협력하고 각자 노력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치과계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달력의 3월 마지막 주에 국제치과박람회(IDS) 일정이 표시되어 있다. 세계 치과산업의 중심지인 독일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서, 한국은 개최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기업이 참여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임플란트부터 구강스캐너, 3D 프린터와 소재, 밀링머신, CAD-CAM 블록까지… 한눈에 둘러봐도 우리 기술이 얼마나 앞서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산업적 기반 덕분에,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와 재료를 손쉽게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더 놀라운 변화는 ‘디지털이 곧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보철물 제작이 이제는 클릭 몇 번이면 프로토타입이 완성된다.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쟁이 가격 현실화를 이끌며, 고가 장비가 더 이상 일부 대형병원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진단부터 치료 계획, 임시 수복물 프로토타입 제작, CAD-CAM 가공을 통한 개선된 수복물을 바꿔 장착하며 구강 내에서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 수복물로 ‘컨트롤 C, 컨트롤 V(복사 붙여넣기)’하는 디지털 워크플로우는 한 번 익숙해지면 이전 방식으로 되돌아가기조차 불편하게 만드는, 디지털만의 강력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편리함과 정밀함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이 디지털 혁신의 혜택을 적극 활용할 차례다.

 

돌아보면 디지털 치의학의 여정은 완벽함이 아닌 ‘계속함’으로 완성되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의견을 협력의 기회로 삼으며, 작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기에 오늘의 혁신이 가능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료 치과의사와 연구자 여러분께 전하고 싶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해지려 애쓰기보다 함께 배우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좌충우돌하더라도 계속 도전할 때, 디지털 치의학이 만들어낼 더 나은 내일에 닿을 수 있다.

박지만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보철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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