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달장애를 가진 한 환자가 진료실 문턱조차 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치과 기구를 보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렸고, 보호자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체념했다.
하지만 ‘장애인 치과 주치의’를 통해 몇 차례의 내원와 환경 적응을 거친 지금, 환자는 스스로 치료도 받고 치아 교정까지 앞두고 있다. 이처럼 현장에서 제도가 안착하며 개원가에 적잖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어 주목된다.
개원 5년 차를 넘긴 광주의 서울우리아이치과는 장애인 치과 주치의 시범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지난해 2월부터 해당 사업 참여에 나섰다. 처음엔 생소했지만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는 각오로 제도를 익혔다.
이어 환자·보호자 설문을 통해 ‘타인의 시선과 소음’이 가장 큰 불편 요인임을 확인하고, 치과에 별도로 장애인 전용 진료실을 새로 만들어 조용하고 안정된 공간으로 꾸몄다. 이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엘리베이터 접근성도 확보했다.
초기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장애인 환자와 섞이지 않는 독립 진료실에서 진료를 경험한 환자들이 만족감을 보이면서 보호자 사이에 입소문이 퍼졌다. 이후 지역 장애인 보호작업장과 협력해 단체 예약도 이어졌다.
# 장애인 환자 월 진료예약 200명 달해
그 결과 올해 3월 85명이 방문했고, 4월에는 200여 명이 예약할 만큼 내원 환자가 빠르게 늘었다. 또 광주 내 여러 장애인 시설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원빈 서울우리아이치과 원장은 “주변에서 어떻게 많은 환자를 진료하게 됐는지 묻지만, 처음부터 계획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며 “진료실 밖에서 한 번 더 건네는 말이 변화를 만든다. 환자 반응을 듣지 않았다면 전용 진료실을 만들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원 8년 차에 접어든 경기 평택의 퍼스트어린이치과도 ‘장애인 치과 주치의’를 현장에 연착륙시킨 모범 사례 중 하나다. 현재 주치의 등록 환자는 약 70~90명, 환자·보호자 추천과 입소문으로 환자가 늘고 있다.
첫 내원 환자는 발달장애 아동이었는데, 진료실 입장조차 힘겨워 울음을 터뜨렸다. 의료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첫날엔 기구만 보여주거나 만져보게 하고, 두 번째 방문에는 보호자 품에서 진료실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이후 진정치료(sedation)를 통해 부담을 줄이며 치료를 시작했다. 환자도 기본 검진과 예방치료를 받아들였고, 보호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교정치료까지 진행하게 됐다.
박기봉 퍼스트어린이치과 원장은 “치과의사로서 소명을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장애인 환자를 진료하며 받는 감사 인사가 큰 보람”이라며 “일선 개원가에서도 충분히 진료 가능하니, 대학병원 외에도 지역에서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들 두 치과는 최근 열린 ‘장애인 건강보건 서비스 우수사례’ 시상식에서 각각 보건복지부장관상(최우수상)과 국립재활원장상(장려상)을 수상했다.
장애인 치과 주치의 제도는 이제 막 현장에 자리잡는 모양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인지도 부족과 제한된 혜택은 여전히 해결 과제다. 현장에서는 제도 홍보·안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예방·경증 치료는 지역 치과, 고난도·전신마취 진료는 대학병원이 담당하는 역할 분담 체계와 함께, 수가 현실화, 인력 지원, 치료 항목 확대를 통한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원빈 원장은 “대다수 장애인 환자가 간단한 진료도 대학병원에서 오랜 대기 끝에 받고 있다”며 “동네 치과도 충분히 지역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장애인 환자들이 간단한 스케일링이나 검진은 집 근처에서 편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기봉 원장은 “현재 불소·스케일링 등 예방 중심의 진료만 제공돼 비용 절감 효과가 작아 환자 체감도가 낮다”며 “충치 치료나 엑스레이 등 일부 급여 치료에도 본인 부담금을 낮추면 좋겠고, 예방 외에도 실질적인 치료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