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사유의 본격적인 형태는 구조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가능했다.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 테제들에 속하는 변별성과 자의성을 보자. 하나의 기호의 ‘의미’는 그것에 내재해 있지 않다. 즉 자의적이다.
야옹이를 ‘개’라고, 멍멍이를 ‘고양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개’라는 기호가 꼭 멍멍 짖는 동물을 가리켜야 할 이유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즉 기호와 사물의 관계는 ‘자의적(arbitraire)’이다. 그래서 기호의 의미는 변별성을 통해서 결정된다. 만일 개와 고양이라는 기호에 어떤 필연성도 없다면, 중요한 것은 ‘개’가 반드시 무엇을, ‘고양이’가 반드시 무엇을 지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우리는 이미 그런 지시 관계가 확립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개와 고양이가 구분된다는 사실 자체이다.
‘중위’라는 기호에는 내재적 의미가 없다. 그것은 소위와 대위 사이에 존재하는 기호인 것이며, 이 기호들과의 ‘변별적인(differentiel)’ 즉 차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서만 중위인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학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라고 말한다. 의미는 현상학이 말하듯이 인간 의식에 의해 구성되는 것도 아니요, 해석학이 말하듯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요, 실증주의가 말하듯이 말과 사물의 일대일 대응 관계를 통해서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의미는 "차이들의 놀이"를 통해서 성립한다.
토템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토템은 하나의 기호이다. 그것은 기능적 의미가 아니라 구조적 의미를 가진다. 즉 자의적이고 변별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토템과 씨족 사이에는 어떤 자연적 인과, 실질적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며, 또 각 토템의 의미는 홀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토템들과의 구조적 관계를 통해서 성립한다는 것을 말한다. 북미 오대호 지방의 세 인디언 씨족들은 각각 독수리, 곰, 거북이를 토템으로 가진다.
더 선명한 예는 백곰 토템과 흑곰 토템이다. 이렇게 나뉜다고 해서 한 씨족은 검고 한 씨족은 희지 않다. 사실 백/흑으로 하든, 청/황으로 하든, 물/불로 하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변별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별은 이 두 씨족이 본래의 씨족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함축한다.
기능주의가 비교적 눈에 보이는 기능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구조주의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측면, 어떤 장의 심층적이고 무의식적인 구조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점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사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결혼 제도
레비-스트로스는 마르셀 모스의 영향을 받아 미개 사회를 ‘교환(echange)’의 관점에서 본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레비-스트로스가 미개 사회를 ‘평형(equilibrium)’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가 문명 사회를 ‘뜨거운 사회’로 보고 미개 사회를 ‘차가운 사회’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관점은 오늘날 여러 면에서 극복되었다. 클라스트르의 인류학이 보여주었듯이, 미개인들의 교환은 그 안에 욕망과 권력의 측면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레비-스트로스가 미개 사회의 결혼 제도를 연구한 성과는 나름대로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미개인들의 교환을 ‘포트라취’라 부른다. 그리고 교환의 가장 핵심적인 대상들은 여자, 재물, 언어이다. 이 세 항목을 교환함으로써 미개 사회는 평형을 유지한다. 즉 정체되지도 않고 또 와해되지도 않는다.
우선 기본 개념들을 짚어보자. 족외혼과 족내혼의 구분이 있다. 말 그대로 다른 족 사이에서의 결혼과 같은 족 내에서의 결혼을 말한다. 같은 족 내에서만 결혼하면 사회가 정체되고 하락하기 때문에 족외혼이 일반화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제한적 교환과 일반적 교환이 있다. 제한적 교환은 일정한 테두리(대개 두 집단) 내에서의 교환을 말하고, 일반적 교환은 여러 집단들 사이에서의 복잡한 교환을 말한다.
결혼 제도에서 레비-스트로스가 핵심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근친혼의 금지’이다. 즉 근친상간(近親相姦)의 금지이다.
<다음호에 계속>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