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만나는 철학이야기
현대사상의 파노라마Ⅱ<4>

  • 등록 2003.03.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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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과 ‘거울 단계’> 기표, 무의식, 주체 이제 어린 아기가 어떻게 상징계로, 기표들의 세계로 진입하는가를 이야기했다. 이제 이 기표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진행시켜 보자. 주체는 상징계에 들어감으로써, 기표들의 장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되며, 하나의 ‘인간’이, ‘주체’가 된다. 물론 인간, 주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는 근대 주체철학의 뉘앙스와 정반대이지만. 요컨대 기표의 상징적 질서가 주체를 구성한다. 이것이 라캉의 기본적인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이며 그를 레비-스트로스에 이어준다. 그러나 이 상징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레비-스트로스와 현저하게 다르다. 라캉은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를 상세하게 분석한다. 한 귀부인이 바람을 피운다. 애인에게서 온 편지를 읽다가 대신이 들어오는 바람에 당황하게 된다. 부인은 일부러 편지를 허술하게 숨김으로써 위기를 묘면하지만, 대신에게 편지를 뺏긴다. 대신은 일부러 편지를 허술하게 숨긴다. 사립탐정인 뒤팽이 편지를 찾는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이 이야기에서 유심히 볼 것은 1) 귀부인, 대신, 뒤팽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주체성’은 이 이야기 전체를 구성하는 디아그람(계열들의 장) 속에서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어떤 상징적 질서 즉 기표(편지)의 장이 존재하고 그 기표의 ‘위치’에 따라 - 그 기표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 상이한 의미와 주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주체가 주어져 있고 그 주체의 ‘의식’으로부터 의미가 나온다는 사유와는 전혀 다른 사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신화소, 음식소 등등이 일정한 정적 구조를 형성하는 레비-스트로스에서와는 달리, 라캉에서 구조는 역동화된다. 도둑맞은 편지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기표인 편지는 여기저기를 옮겨다닌다. 이 옮겨다님이 시시각각으로 구조의 구조를 계속 바꾼다. 편지는 나타남과 숨음의 유희를 통해서 계속 의미를 만들어나간다. 기표는 부재(不在)의 상징이며, 부재 즉 일종의 빈칸이 의미를 계속 생성시킨다. 루이스 캐롤의 ‘스나크’, ‘오셀로’의 수건,… 들뢰즈는 이런 존재를 ‘우발점’이라는 개념으로 일반화시킨다. ‘떠다니는 기표’라는 개념은 레비-스트로스에서도 등장하지만 라캉에 이르러 그 의미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기표가 기의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도는 것이다(편지의 내용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기표는 기의에 속박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초월성’을 부여받는다. 3) 구조주의자답게 라캉은 인간의 추상적인 본질이나 개별적인 본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관계만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관계를 기표가 지배한다. 즉 상징계가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표들의 장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를 구성한다. 그런데 여기에 욕망의 개념이 등장한다. 인간은 언제나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타인이 자신에게 ‘똑똑한 사람’이기를 요구하면, 자신은 타인의 욕망하는 그것을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지향하는 것은 곧 기표이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기표가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상징계, 같은 구조라 해도 레비-스트로스의 경우와 라캉의 경우는 현저히 다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가 욕망이라는 기름기가 제거된 수학적이고 명징한 구조라면, 라캉의 구조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욕망 이외의 것이 아니다. 라캉에 이르러 이제 욕망이란 특수한 의미, 부정적인 의미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본성으로, 세계의 성격 그 자체로 대두된다. 요컨대 의식으로부터 기의가 생기고 기의를 나타내기 위해 기표가 존재하는 것(현상학의 입장)이 아니다. 기표들의 장이 존재하고, 그 기표들의 장에 의해 주체가 - 의식적 주체 이전에 무의식적 주체가 - 구성되고, 그로부터 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언어의 법칙이 먼저 존재하고 각개인의 무의식이 그 언어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철학아카데미 02)722-2871 www.acaphil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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