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사랑하는 치의신보여! 한때는 세계의 공중구강보건을 보여주며 신념을 주었던 그대여, 대게 사랑이란 열정은 단지, ‘나를 위하여’그리고 ‘상대방을 향하여’ 타오르고, 그러다 증오로 변하여 자폭할 수도 있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선 사랑은 오직 ‘상대방을 위하여’타오릅니다. 이 사회의 모든 ‘상대방들을 위하여’다시 태어나는, 사랑하는 그대에게 드립니다.
‘이념을 회피하는 자는 결국 개념도 파악할 수 없다’(괴테)/ 언론의, 아니 치의신보의 이념을 되새겨보자. 치의신보는 본질적으로 치과의사들을 위한 신문이지만, ‘치과의사만’을 위한 신문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치과의사는 전문직을 지닌 개인인 동시에 공인이며, 공익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의신보는 환자와 의약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회전체가 상호 교류하는 열린 ‘대문’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文은 武보다 강하다’는 말만큼 언론의 위력을 실감나게 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신문 ‘활자’의 위력 앞에 대중들은 약하다고 한다. 때로는 신문에 실린 것만으로 ‘선’이 ‘악’의 탈을 쓰고 버젓이 활보하고 반론이 실릴 여지가 없게 만들어 버리는 편파보도에 실상이 왜곡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언론에서 언급하는 것만으로 사회적 ‘정의와 진실’이 아니며, ‘형평성’에 맞는 것이 아님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신문 내용을 진실 그대로 맹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통치권력’은 언론을 통제하고 장악하려고 하여왔다.
솔직히, 저의 치의신보에 대하여 각인된 이미지는 두 가지-‘불친절’, ‘편파’이다.
1. 아주 아주 오래 전 광고를 실어야 하였을 때, 전화 수신자가 무척 불친절하였다는 인상과 함께 신문에 ‘부산’ 이 ‘부천’으로 엉뚱하게 실린 것이다. 정정을 다시 부탁(?)하는 측보다도 여전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당당하게 응하던 치의신보 담당자.(그 즈음 의협신문은 광고 건은 반드시 팩스로 보내주어야 오류가 없다고 전화 접수를 절대 사양하였다.)
2. 치과계에서 이슈가 된 사안이 실렸다. 그것은 그 글을 쓴 치과의사의 입장이며, 그 개인의 입장이다. 당사자는 신문에 자신의 글이 실렸으니,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증거라는 글을 다시 공개적으로 올리고 있었다. 왜 그러한 사회적 이슈에 치과의사가 아닌 사람의 의견, 다른 의견을 지닌 치과의사의 의견은 치의신보에서 게재하지 않았을까? 신문에 실린 ‘일부 사실’이 전국의 해당 집단의 ‘전체 사실’이나 해당 사안의 ‘실체적인 진실’과 일치할까?
‘K 일보’사건처럼 어떠한 특정 업무에 관계된 전체 집단이 왜곡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 좋은 언론이 되려면 ‘합법적인 견제’는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좋은 언론의 요소는 (1)언론인의 정직이다. 개인의 정직(Personal Honesty)은 언론인이 재량권을 이용하여 개인의 이익이나 특정 단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2)중립(Neutrality)과 사회적 형평(Social Equity)이다. 언론은 어느 특정 단체나 개인의 정치적 영향이나 신념을 재해석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통하여 독자에게 알리는 도구주의자적 견해를 취하여야 한다. 사회적으로 수직적, 수평적 형평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지역, 연령, 분야의 치과의사의 의견 뿐 아니라 치과계 종사자와 환자의 의견과 애로도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3)공공복리(Utility)추구이다. 공리의 원칙에 따라, 사회내의 모든 구성원의 행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활동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약자들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사회 내의 권력과 부를 균등하게 분배하는데 언론의 재량을 사용하여야 한다. (5)치과의사의 성장욕구(Growth need)와 사회적인 관계욕구(Relatedness need) 실현이다. 세미나나 보수교육의 게재 뿐 아니라 참여후기와 성과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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