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46]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와 조선총독들

2005.07.21 00:00:00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는 조선에 부임 한 후 9대의 총독의 치아를 치료했다. 그 중에는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냈던 총독도 있었다.


나기라 다쓰미가 부임했을 때의 총독은 데라우치 마사키(寺內正毅) 육군원수였다. 아주 엄격하나 온정에 찬 총독이었다. 데라우치 마사키 총독에게 치주질환이 있어 나기라 다쓰미는 일주일에 한 번정도 관저에 왕진하러 갔다. 나기라 다쓰미가 총독의 치료를 끝내면, 응접실에서 홍차와 다과 향응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한 매우 추운 날에는 부관을 불러 브랜디를 가지고 오게 하여 “선생, 오늘은 추우니까 브랜디를 마시게”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 무렵 조선 13도에 도립의원이 있어 치과의도 한명씩 채용되어 있었다. 그러나 임관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모두 촉탁으로 있었기 때문에 불평이 많았다. 어떤 때인가 “각 도립의원에 배치되어 있는 치과의만이 촉탁이고 다른 직원은 고등관판 임관이어서 치과의 불만이 많다.”고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다음 해 4월 각 13도 판임관 13명을 관제 개정하여 전국에서 치과의가 판임관에 임명되었다. 이 일은 데라우치 마사키 총독이 나기라 다쓰미의 진언을 즉각 인사부에 명령해서 관제를 개정했다고 생각된다.


우가키 가즈나리(宇垣一成) 총독, 이마이타 마사(今井田) 정무총감은 같은 고향 사람으로 일본에서 시부사와(涉澤) 관저에 초대되었을 때에 나기라 다쓰미도 초대되었다. 하세가와 요시미찌(長谷川好道) 총독에게는 총의치를 만들어 주었는데 매우 기뻐했다.


고이소 쿠니아키(小磯國昭) 총독이 조선군사령관 시대에는 관저에 다카난(高楠) 산부인과 과장과 둘이서 자주 초대되어 술을 마셨다. 많이 마실 때는 11시까지 마셨는데 그때는 군사령관의 자동차로 자택까지 태워 주었다. 조선신궁의 아래에 나기라 다쓰미의 집을 신축하고 있었던 일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고이소 쿠니아키가 총독이 된 후 어느 때인가 총독부로 방문하여, “한번 저희 집으로 부인과 두분이서 12시경에 오십시오.”하고 부탁했다. 총독이 오면 순사가 집 주위를 경비하기 때문에 순사가 경비서지 않도록 당부하면서 말했다. 그러자 둘이서 오겠다고 수락했다. 총독부처가 정시에 왔기에 2층으로 안내하여 6시까지 아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담소했다. 물론 총독은 민간인의 집에는 절대 가신 적이 없을 정도로 아주 이례적인 일로 지금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도 이가 나빠 윗 턱의 앞니 6개가 흔들흔들 했다. 발거하고 총의치를 만들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오전 8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京城齒科醫學專門學校) 특진실에서 한번에 6개를 빼고, 즉시 인상을 뜨고, 교합을 채득하고, 시적을 끝내고, 상하의 총의치를 하루 안에 끼웠다. 그날 저녁에 무순(撫順)으로부터 불닭을 받았기 때문에 먹어보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날에는 한번 세조했는데 아주 잘 맞았을 정도로 나기라 다쓰미는 인정받는 역대 총독의 주치의였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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