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의료법과 민중의술, 그리고 로스쿨 (2)/임철중 임철중치과의원 원장

2005.10.03 00:00:00

 


<제1395호에 이어 계속>


대학에 진학하여 서울로 올라간 첫 해에 지독한 설사로 고생을 했다. 수련의이던 형님이 서울대학병원 처방을 사흘 분 조제해주더니 며칠 뒤에 묻는다.


“이제 좀 괜찮지?” “응, 형이 준 약이 딱 떨어지니까 설사가 뚝 그치네.”
섭섭한 기색이 역력하다. 약이 맹탕이 아니라 사흘을 복용한 다음에야 약효가 나타났다는 뜻인데, 그만 비아냥으로 들린 것이다. 진심은 그게 아닌데 왜 그렇게 듣는지, 사람의 진정성을 왜 몰라주는지….


황판사는 비염(鼻炎)으로 수술까지 받았으나 낫지 않아, 동네 침술원에서 뜸으로 고쳤다고 주장한다. 판사가 의료문제를 제기하니까, 옆 동네 치과의사도 끼어들어 보자. 이비인후과 의사는 비염이나 상악동염이 낫지 않는다는 말 대신 재감염 된다고 설명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최고 권위자이던 서울대 김진영선생을 주치의로 두고도 여러 해 고생한 얘기는 유명하다. 비염에는 감기 합병증, 기후, 알레르기, 생활습관, 그밖에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 변수가 많다. 황판사가 고시에 합격한 그 해에 병이 나았다는 말을 들으면, 뭔가 집히는 데가 있다.
사람을 잘 믿는 것은 덕성(德性)에 속한다. 단, 축적된 교양과 지식으로 여과하지 않고 무작정 엎어지는 것은 맹신(盲信)이다. 더구나 수많은 검증을 거쳐 사회의 99% 이상이 공인한 의견은 가볍게 보고, 극히 예외적인 소수의 편에 서는 것은 균형감각의 상실이다. 물론 기적을 믿는 종교적인 차원이라면 모르지만….


식민통치에 이은 6·25전쟁, 다시 몇 차례 격변을 거치면서도 산업사회 건설과 민주화를 성취한 초고압 압축성장, 그 와중에 우리 전문직종의 경력은 천차만별이었다. 의사나 치과의사는 한지(限地)와 검정, 정규 6년제 출신과 해외파가 있다. 일제 때 행정직 법원서기가 의례적인 심사를 거쳐 판검사로 임용되고, 고졸(高卒)학력도 고등고시에 합격하면 그만이었다. 특히 소수선발시대에는 합격이 곧 고위직을 의미하였다. 당시 응시생 간에 오가던 얘기가 있다.


합격의 첫째 조건은 암기능력. 뇌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니까, 3개월쯤 짧은 기간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단다.
다음은 예상문제 적중률. 친구나 선배들과 함께 만들어 달달 외운 문제들 가운데 몇 개가 출제 되었는가, 즉 로또 복권식 행운이다. 그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노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단 한차례 시험으로 국민생활과 국가의 장래가 걸린 인재를 뽑는 절차는 문제라는 것이다.


의·치대에 전문대학원제도가 도입되어 최소한 8년의 과정을 거쳐야 의료인이 탄생할 전망이고, 법조계에는 로스쿨 논란이 일고 있다. 중요한 전문직 교육과정에 정규대학 졸업자에게만 입학자격을 주는 것은, 단 한번의 시험에 올인 할 수 없으니 내신 성적에 큰 비중을 두자는 대학입시와 일맥상통한다. 사람을 써보면 대학 보다 출신 고등학교의 신뢰도가 더 높은 경우가 많고, 따라서 획일적인 내신평가나 평준화로 주저앉은 고교 수준도 문제이지만 필자는 로스쿨제도에 찬성한다. 첫째 이유는 ‘이해력’ 향상이다. 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남에게 이해시키지도 못한다. 전문직 교육내용은 말 할 것도 없다. 차원 높은 의사소통과 수학능력을 위한 기본지식과 교양이 필수다. 최소한의 독해력과 한 문장에서 앞뒤 문맥을 맞출 줄은 알아야 한다.


둘째는 ‘판단력’ 갖추기다. 독학(獨學)의 단점은 외곬으로 편향되기 쉽다는 것인데, 전문직 일변도인 교육도 이와 비슷한 문제점을 갖는다. 정규대학 급우들과 사귀고 경쟁하며 다양한 시야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훗날 전문직 교육과정에서 균형 잡힌 열린 시각, 즉 판단력을 배양하는 데에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험한 코스를 등반(登攀)하기 전에, 편견의 늪이나 방향착오의 미로에 빠져들지 않도록, 지도를 읽고 장비를 점검하며 체력을 비축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해력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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