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55)]학회잡지와 야오 타로 (失尾太郞)

2005.10.27 00:00:00


야오 타로(失尾太郞)는 원래 공부벌레도 아닌데 어떻게 된 것인지 공부하는 사람처럼 오해되어 언제나 학회의 운영자로 떠밀렸다. 조선치과의학회 총회가 수차례 반복되어 학회답게 되었지만 아직 회지를 가지지 못했다. 1924년 총회 후 잡지의 편집을 떠맡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학회잡지 편집을 맡았다. 그리하여 선배인 오카다 타다시(岡田正)의 도움을 받아 고심한 결과로 25년에 겨우 제1권 1호를 발간했다.


창간호 1페이지 1항에 시가 키요시(志賀潔)로부터 제자(題字)를 받아 46배판의 훌륭한 잡지가 되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매년 학회잡지 편집을 맡게 되어 조선호텔 옆에 있는 치카사와(近澤) 인쇄소에 많은 신세를 졌다.


1932년 경성치과의학회가 창립 된 후에도 나기라 다쓰미 선생이 회장이고 스기하라 도쿠유키(杉原德行)를 편집고문으로 내가 편집사무를 전부 맡아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꽤 전문적인 것을 발간했다. 그 원본은 일본약물학회지로 교토(京都)대학의 오자와 료준(尾崎良純)으로부터 매우 칭찬을 받아 기뻤다.


황색의 표지, 가로쓰기, 로마자도 적어 넣고, 이 모든 것이 일정한 편집기준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에서 일류 잡지가 되어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비용도 상당했지만 학교에서 전부 지불하였으므로 걱정 없이 호화판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본지에 실린 논문은 어느 대학에서나 주론으로 인정받았다. 이것은 회장 나기라 선생의 선견지명에 의한 것으로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본지에 주 논문을 실은 것은 오카다 타다시(岡田正), 니시야마 유키오(西山幸男)(歐文), 히로타 세이이찌(弘田精一), 카키미 요죠(垣見庸三), 호리 타께시(堀武), 박명진(朴明鎭), 여기에 나 야오 타로(失尾太郞)이다. 야오 타로는 1943년까지 편집에 종사하고, 그 후를 카키미 요죠(垣見庸三)가 인수 받아 도합 제10권까지 발간하였다. 그 후 종전으로 폐간이 된 것은 정말로 아쉬운 일이다.


이러한 관계로 전부를 위임받은 야오 타로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독재성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논문저자와 양식 때문에 종종 싸우기도 했다. 인쇄소의 공장장과도 몇 번 말다툼했는지 모른다. 경성의 인쇄업계에서 치과의학전문학교의 야오 타로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사람으로 통했다. 지금도 때때로 당시의 치카사와점(近澤店)의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아마 그 인연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모교의 치과의학의 편집과 나가스에(永末)서점을 돕는 일이 가능한 것은 경성에서의 잡지편집이 아주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스기하라 도쿠유키(杉原德行)의 지도에 의한 것으로, 논문·인쇄에 관해서 특히 까다로운 버릇은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다.
주 논문을 20편 이상 다시 쓰게 하여 “평판이 매우 나쁜 성질은 죽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단념하고 있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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