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론-오 성 진 (본지 집필위원) 세상이 어두워 보입니까?

2009.02.23 00:00:00

어느 광고 카피를 보니, 일생 동안 웃는 시간이 21일 밖에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통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차이가 있어 봐야 오차 범위 안이다.
왜 그럴까. 우리의 삶이 즐거운 것보다는 그렇지 못한 시간이 많게 된 것은 왜일까?
사실 아주 어렸을 적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로서야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고 하지는 못했지만, 즐거운 나날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자신에게 허락된 범위 내에서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허용된 범위는 비할 수 없이 늘어났지만, 져야 될 짐의 무게 또한 비할 수 없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에서 볼 때, 어른이 즐겁지 못한 이유는 짐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짐을 벗어 던지고 산 속으로나 들어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한가지 해결책일 수 있다. 속세를 떠난 승려들이 평생을 그곳에서 보낼 수 있는 것도, 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도 자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따라 오라"고 이야기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가벼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떠난다는 것은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자신의 거취를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즐거움을 찾는 삶은 불가능하고 절망적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속세를 떠날 마음이 있을 정도라면, 현실에서도 충분히 잃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루의 세끼 밥이 반드시 먹어서 맛있기 때문에만 먹는 것은 아니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그러나 즐겁게 먹기 위한 연구를 쉬지 않고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맛있는 식당을 찾아서 멀리까지 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맛있는 밥상이 되도록 노력하듯이 맛있는 일이 되도록 노력한다면, 결코 즐거움이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같은 고통이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저주로 느껴지지만, 의미를 찾는 사람에게는 인내 후의 얻는 성취감, 만족감을 바라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은 틀림없는 진리다.
사실, 짐이라는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 주어야 할 것들이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에 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해 주어야 할 일이 누군가에게 해 주고 싶은 일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기쁨을 찾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선물도 받을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더라도 무엇인가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번 안아 주는 것만으로도 서로 기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자신이 가지려는 생각이 많을수록 고통은 따라 오고, 주려는 마음이 많을수록 기쁨이 따라 온다는 진리를 우리는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렇게 산다면, 이런 나라에서 살기 때문에 즐겁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살든지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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