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진 월요 시론] 홍수

2012.05.14 00:00:00

월요 시론
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홍 수


요즈음 신문의 머리를 채우는 기사들은,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무겁게 한다. 어떤 것은 공포를 주고, 어떤 것들은 불안을 주고, 어떤 것들은 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준다.


과거는 어떠했는데 하는 이야기는 현재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한 점들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지만, 현재의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과거가 완전한 모습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지식이 쌓여 왔고, 해법들도 셀 수 없이 쌓여 왔건만, 오히려 문제들은 더욱 복잡해져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과 같은 매스미디어는 알고 싶은 지식을 전달하고 공유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사람들간의 교류만큼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없고, 인터넷만큼 사람들간의 교류를 원활하게 해 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보급이 되지 않았고, 국제간의 교류가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오랫동안의 관습을 기반으로, 단순한 생각으로 세상을 운영할 수 있었다.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도 처리하는 법이 어렵지 않았다. 오랜 전통 속에서 익숙해 온 방법으로 판단을 하였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일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이 된다. 상식에 순응하는 사회. 그것이 과거의 사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상식적인 틀에서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재판이라든지, 솔로몬의 재판과 같은 이야기는 상식과 지혜를 설명하는 좋은 예이고, 그러한 것을 몸에 베이게 하기 위해서 사회와 가정에서는 늘 그러한 것들을 일깨워주는 생활을 해 온 것이 과거였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사람들에게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관해서 물어 본다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물론 베니스의 상인을 읽지 않았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유명한 문호의 작품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학입시에 세익스피어가 출제될 가능성보다는 현대인의 글이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고, 그런 먼지가 끼인듯한 책에서 얻는 상식으로는 다양성이 넘치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정보가 인터넷의 보급과 국제간 교류의 활성화로 이 세상에 넘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넘쳐나게 되었고, 익숙할 겨를도 없이 또다시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나와서 이제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매우 혼란스러운 세상에 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발전’이라고 이야기한다. 누릴 것이 늘어났고, 편리한 도구들이 늘었기 때문에, 현대는 급속한 발전을 하였다고 생각들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한 발전일까.


사실, 많은 것을 누리게 된 것은 사실이고, 도구들이 늘어난 덕분에 편리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을 발전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생각해 볼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먼저, 무엇을 위한 발전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많은 누릴 것들로 인해서 삶이 편해졌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발전을 할수록 사람들의 생활에 여유가 생겨야 하고, 머리 아픈 생각을 하지 않고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활이 더욱 불편해지고, 여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면, 그런 것을 발전이라고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수 많은 정보들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호기심 때문에 없어도 좋고 알지 못해도 좋은 것들까지 알게 되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들이, 처음에는 매우 신기하기도 하고 편리하게도 느껴지지만, 잘 다루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전화라든가 메시지 교환기능 이상의 기능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알지 못하는 기능들로 인한 박탈감, 열등감으로 눌려 있는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물질과 정보의 홍수. 그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어서 홍수의 두려움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관련기사 PDF보기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