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방법

2012.08.16 00:00:00

사랑의 방법


날이 너무 더워, 얼마 전에 동창 신부님을 만나서 맥주를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40대 후반의 나이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배려…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그 신부님이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짠~ 했습니다.


그 신부님의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인데, 그 때가 초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었답니다. 그 신부님은 어릴 때 방학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에서 지냈답니다. 그런데 당시 그 동네에 서울 아이가 가면, 시골의 또래 아이들이 ‘서울 촌놈’ 왔다며 놀려대면서, 놀아주지를 않았답니다. 자신은 그들과 친구가 되어 들이며, 산이며 그렇게 뛰어 놀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럴 때 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도 좋지만, 시골 생활이 너무 싫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자신과 놀아주는 유일한 친구 아닌 친구가 있었는데, 그건 할머니가 마당에서 키우시던 검정개였답니다. 그 검정개만이 자신이 시골에 가면 가장 먼저 반겨주고, 놀아주고, 함께 들이며 산으로 뛰어다녀 주더랍니다. 한 마디로, 동물 이상의 절친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검정개를 사랑했던 그 신부님은 무엇이든지 검정개랑은 함께하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으스륵한 겨울의 저녁, 할머니는 아궁이에서 손자인 그 신부님이 좋아하는 군고구마를 구워다 주셨답니다. 노릿하게 구워진 고구마는 반으로 툭, 쪼개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맛있는 군고구마였답니다.


이렇게 할머니로부터 고구마를 한 개 건네받은 자신은 호호 김을 불며 한 입을 맛있게 먹다가, 문득 자신의 절친 검정개랑 군고구마를 함께 먹고 싶어졌답니다. 그렇게 검정개 생각이 들자마자, 그 신부님은 개집이 있는 마당으로 뛰어갔답니다. 검정개 역시, 저녁을 먹고 개집에서 웅크리고 있었는데, 절친이 된 그 신부님을 보자 후다닥, 개집에서 나와, 꼬리를 흔들며 그 신부님을 무척이나 좋아하더랍니다.


반갑게 검정개를 끌어안은 신부님은 그 절친 검정개를 사랑하는 마음에, 잘 익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 맛난 군고무마를 그 개가 한 입에 먹을 만큼 떼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검정개 역시 절친이 주는 군고무마를 낼름 받아서 한 입에 삼키려는데, 바로 그 순간 평생 듣도 보고 못한, 시멘트에 쇠 갈리는 듯 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검정개가 미친 듯 날뛰더랍니다.


이 소리를 듣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슨 큰 일이 일어났나 싶어 맨발로 마당에 뛰어나오셨는데, 발광을 하는 검정개를 유심히 보던 할머니는 깜짝 놀라 얼어있는 손자에게 물었습니다. ‘개에게 뭘 먹였냐고.’


그러자 신부님은 ‘좀 전엔 할머니가 준 군고구마 반쪽을 검정개에게 주었다’고 했더니, 그 날 밤 할머니에게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개들은 뜨거운 것을 못 먹는데, 그렇게 뜨거운 군고구마를 주니, 개는 먹는 것인 줄 알고 왈칵 먹고 삼키려다가 입안 전체가 다 데여버렸다는 말씀과 함께! 그 후 몇 일 동안 그 개는 정말 아무 것도 못 먹고, 개집에서 가만히 누워만 있었답니다. 그 자신이 다가가도 꼬리만 흔들어 댈 뿐 말입니다. 


이야기 끝에 신부님은 자신을 친구로 받아주고, 따르던 개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뜨거운 군고구마를 주었을 뿐인데, 오히려 그것이 개에게는 치명적인 고통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 그것도 방법이 있는 것 같아. 사랑하는 그 누군가에게 자신의 무조건 주고 싶은 마음,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그 사람도 함께 좋아하리라는 생각에 뭔가를 더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한 번 그 마음을 성찰해 보아야 할 것 같아. 진정 사랑하는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진심으로 필요로 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일인지. 참 좋은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뭘 많이 주는 것 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지 아는 것 같아.”


그렇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스러운 생각, 때로는 그 생각이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결과적으로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명심해 봅시다. 사랑, 어쩌면 그건 배려의 또 다른 말이기 때문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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