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진 월요시론] 올해도 많이 버려야 할 것 같다

2012.12.10 00:00:00

월요시론
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올해도 많이 버려야 할 것 같다


세상이 인터넷으로 묶이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참으로 짧은 시간 동안에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다. 변화를 따라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적응하느라고 사는 것이 삶인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많다.


사람들은 세상이 참으로 편리해졌다고 말들을 한다. 필요한 것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인터넷 브라우저 창에 자신의 언어로, 대화하듯이 질문을 써 넣으면, 알고 싶었던 것들의 대부분이 자기 앞으로 다가 오고 있고, 조금만 부지런한 마음으로 움직이면 좋은 것을 저렴하게 손에 넣을 수가 있기 때문에,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의 사회는, 잘 정리된 지식들이 잘 훈련된 사람들에 의해서 일반인들에게 보급이 되고 있었다. 금으로 말하자면 정련된 금, 정금이 사회에 공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식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지키려고 했던 것이 과거였다. 그리고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불과 십여 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가.


‘흙 속에 묻힌 진주’. 요새는 창고 속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사전에서나 찾을만한 문구이지만, 세상에 범람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들이 그렇지 않은 듯하면서 흙 속에 묻힌 진주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것이면서도 제대로 활용되지도, 사용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흙 속에 묻혀있지 않고 땅 밖으로는 나와 있지만, 잘 닦이어서 좋은 곳에 놓여져 있지 않고 굴러다니는 진주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을 언급하면 그 말씀들이야 말로 매우 낡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세상이기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그리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아직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용을 하고 싶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아니 즐거운가(學以時習之不亦說乎)라는 말씀은 두고두고 새겨둘 만하다.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으면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데,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배우기만 하고 그대로 두는 것은 창고에 넣어 두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자리만 차지할 뿐이고, 관리하는데 시간과 비용만 들 뿐이지 사는 데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오랫동안 진료를 해 오면서 쌓아 온 자료들이 한 트럭분이 되었다. 특히 교정치료를 전문으로 하다 보면 석고모형만 해도 그 양이 엄청나다. 몇 년 전 병원을 옮기면서 이 자료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로 많이 고민을 하였다. 그 때, 나의 스승이 세상을 떠나면서, 귀중한 자료들을 모두 폐기하셨다는 사실이 기억에 떠올랐다. 배우는 우리들에게는 보물과 같은 자료들이었는데, 그러한 수 천 증례의 자료들을 모두 폐기하셨던 것이다. 그 자료가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보니, 수 많은 책들, 수 많은 자료들을 쌓아 놓고 그것을 들춰보는 일이 많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짐들로 인해서 내가 쏟아 부어야 하는 노력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나에게 중요한 것이 그 속에 들어가면 찾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한 트럭분의 모든 자료를 폐기하였다.


가끔은 아까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짐들로부터 해방이 된 후로, 나의 몸과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편해졌다. 가족들과 병원 식구들에게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나의 역사, 나의 업적,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떠나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신 스승께 감사 드린다.


성경에서도 땅 속에 묻어 둔 능력을 호되게 꾸짖는 말씀이 나온다.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다.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되었다. 새 해에는 보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시작을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지게 된다. 올해는 얼마나 많은 것을 버려야 할까. 쓰레기를 치워야 할 사람들에게 미리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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