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어서는 안된다

2014.02.18 13:34:11

월요시론

엊그제 설도 쇠고, 입춘도 지났으니 갑오년 청마의 해가 열린 것에 대한 이야기는 늦은 감이 있다. 그렇다고 2014년 첫 글을 쓰면서 한 해의 열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이 오고 가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사람들이 지난해니 새해니 하면서 굳이 구분하고 있는 것과 필자가 청마의 해 운운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해는 말(馬)의 해다. 그 가운데서도 청마의 해다. 올 해도 내게 주어진 기회만큼 부끄럽지만 말(馬)로써 말(言)많은 이야기들을 적어 볼까 한다.
의료인들에게 올해는 의료환경 변화에 큰 획을 긋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문제들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급기야 정부에 수가 인상 요구와 파업경고를 보냈었다. 그리고 다음달 3일로 예고된 의료계 총파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대한의사협회 소속 전 회원 투표가 오는 19일부터 27일까지 9일간 실시된다. 총파업 투표까지 아직 정부와 협상이 남아있지만 의료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 같지 않다. 이놈의 정부가 워낙 불통과 독선이 강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협상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는 짐작이다. 이러다간 진짜 의료인들이 ‘빚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는 직군이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기 까지 하다.

 이를 뒷받침 하는 통계가 나왔다. 빚더미에 올라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의사와 한의사가 늘고 있다고 한다. 문을 닫은 병원은 3년새 20~30%로 급증했다. 소위 금융권에서 VIP(우량고객)로 대접받던 의사 직군에 대한 은행 대출도 예전보다 훨씬 까다로워 졌다. 법조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담당지역(인천·수원·춘천을 제외한 수도권·강원도)의 개인회생 신청은 지난 5년간 1145건이었는데 직업별 개인회생 신청자 가운데 의사가 207건으로 2위, 한의사가 130명으로 4위, 치과의사가 112명의로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의사·한의사·치과의사를 모두 합치면 449명으로 전체 개인회생 신청자의 39.2%, 40%에 가깝다. 경영난으로 폐업하는 병원도 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입은 줄고 부채가 늘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병원을 비롯해 전체 요양기관의 폐업이 2012년 5583개로, 2009년 4652개보다 931개(20.0%)증가했다. 이 가운데 ‘동네 병원’인 의원·치과의원·한의원 폐업이 2857개에서 3359개로 502개(17.6%) 늘었다. 특히 치과의원의 폐업 증가율은 32.8%에 달하고 있어 충격적이라 하겠다.

 의료계의 경영난과 폐업·파산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제각각이다. 낮은 진료비와 경쟁 격화 때문이라는 시각과, 의사는 여전히 ‘잘 나가는 직업’이라는 견해가 팽팽히 맞선다.

 환자는 한정됐는데 종합병원과 1·2차 의료기관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과 물가상승률에 훨씬 못미치는 낮은 수가를 정상화 해야 한다는 데 의료인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의사인데…다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환자가 많은 곳은 괜찮고 그렇지 않은 곳이 어렵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의료수가 인상과 이에 앞서 일부 병·의원들의 제약 리베이트 수수와 탈세 등이 근절돼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부각된다.

 격화소양(隔靴搔痒)이라고 했다.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는 고사성어다. 무슨 일을 애써 하기는 하나 요긴한 곳에 미치지 못하는 감질하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인데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어대니 가려운 곳이 없어질리 없는 것이다.

 의료계가 다음달 3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과연 의료인들의 주장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칫 의료계의 주장이 신을 신고 발바닥 긁는 일이 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옳은 주장에도 귀를 닫고 귀머거리 인양 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의료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해서 일이 우리가 의도하는 쪽으로 흘러가리라는 유아기적 발상만으로 덤벼들어서는 안된다. 국민들의 공감대와 명분을 얻지 못하면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꼭 총파업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남은 시간 최대한 지혜를 모으고 협상을 벌여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청마의 해 의료인들의 단합과 한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을 수는 없지 않은가….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찬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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