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이 밝았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치식으로는 표현할 길이 없지만, 미국에서 사용하는 치식으로는 좌측 하악 제2소구치가 20번, 좌측 하악 제1대구치가 19번이므로 둘을 겹쳐서 표현하면 2019가 됩니다. 1918년 이후 무려 101년만에 치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해가 되었습니다.
다음은 2015년 발매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새해 복”이라는 노래 가사 중의 일부입니다.
새해 복 만으로는 안돼
니가 잘 해야지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듣는 사람에게 웃음과 함께 약간의 실망감을 주다가 뒤에서는 다시 이렇게 노래합니다.
새해 복만으로도 돼
절대 잘 하지마
노력을 하지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온라인에서, 모바일에서, 현실 속에서 적어도 100번 정도는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새해 복 만으로 다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복 만으로 안되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웃기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의 고민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럴 때에 운, 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관계가 있나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입니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등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프레임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이 어떠한 것인지 분별하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진리가 있다면, 우리가 행해온 “선”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만한 시간도 있고, 참 허송세월하며 살았다고 자책할 만한 시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했을 때, 그 열심이 쓸데없는 것이었던 적도 많을 것입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그것이 정말로 쓸데없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시간이 더 지난후에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입니다. 그 복이 어떤 복이든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던간에, 우리는 복 받을 만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복이 재물의 복이 아닐 수도 있고, 건강의 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항진
사랑이 아프니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