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백악관, 국회의사당, 워싱턴 기념비, 링컨 기념관 등이 모여 있는 광활한 공원 지역을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라 부른다. 이곳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포토맥강 건너편의 알링턴 국립묘지다. 이곳에는 약 43만 명이 매장되어 있으며, 남북 전쟁에서부터 9·11 테러,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잃은 수많은 군인이 잠들어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가 매우 넓은데도 불구하고 어떠한 음식물도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완만한 언덕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데,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는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라는 베이지색 건물이 케네디 대통령 묘지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알링턴 하우스는 외관이 웅장하지만 내부는 비교적 소박하다. 원래 이 집은 남북 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Robert E. Lee) 장군이 살던 곳이다. 리 장군의 아내 메리 애나 커스티스는 조지 워싱턴의 자손이었고, 워싱턴이 남긴 막대한 토지 중 일부가 리 장군의 아내 메리에게 상속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알링턴 국립묘지 부지 전체에 해당하였다. 리 장군 부부는 대가족이 모여 정원도 만들고 애들도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링컨 대통령은 리 장군을 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그는 고향인 버지니아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이를 거절하고 남군에 가담하였다. 전략적 요충지였던 그의 저택과 토지는 1861년 정부에 징발되었고, 전쟁 중 전사자가 급증하자 1864년부터 저택 주변에 병사들을 매장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알링턴 국립묘지의 시초다. 즉, 남군 총사령관의 집 주위 전체가 북군 병사들의 공동묘지가 된 셈이다.
4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끝에 약 400만 명의 흑인이 해방되었으나, 남군 측 징집 연령 백인남자 30%가 사망하고 남북 합쳐 약 70만 명의 전상자가 발생하였다. 리 장군은 결국 북군의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하였고, 묘지가 되어버린 자신의 집으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였다. 자신도 많은 것을 잃은 상태에서 끝까지 항전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며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말고 남부 백인들이 예전의 남부 연합을 잊고 평화의 길로 가자”라며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수많은 피해를 본 남부 연합 측이 남북 전쟁 이후 느끼는 굴욕감과 수치심이 가득하였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지역을 재건하는 것이 의무라면서 다른 사람에게 원망과 분노를 갖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남북 통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전쟁 직후인 1865년, 그는 워싱턴 대학교(현 Washington & Lee University)의 총장으로 부임하여 남은 생을 대학발전과 교육에 헌신하였다.
훗날 대통령이 된 그랜트 장군은 옛 적수였던 리 장군을 백악관으로 초대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처럼 승자의 아량과 패자의 품격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통합된 미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2008년 11월 4일 밤 12시가 되어 나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 의원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서 감동적인 승리 연설(victory speech)을 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지켜보았다. 오바마는 멕케인 의원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다고 하면서, 멕케인 의원이 미국을 위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희생을 감내했으며, 그의 헌신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나라에 살 수 있었다면서 그와의 협력을 약속하였다.
그보다 몇 시간 전, 선거에서 패배한 공화당 존 맥케인 상원 의원이 애리조나에서 승복 연설(concession speech)을 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맥케인은 오바마와 자신이 의견 차이를 보이며 논쟁을 벌여왔고, 앞으로도 상당 부분의 의견 차이가 있겠지만, 미국이 직면한 수많은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정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청중들이 오바마에 대한 적개심을 여전히 드러내는데도 침착하게 제지하면서 패배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다 같은 미국인으로 협조해 줄 것을 강조하였다. 두 사람의 연설 모두 깊은 인상을 주었지만 특히 멕케인 의원의 연설에서, 비록 남북 전쟁에서 패했지만, 그 이후의 역사에서 누구보다 존경받았던 리 장군이 생각났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서 승자의 아량과 패자의 품격이 점차 사라지고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로 빠지는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지난 수년간 대한치과의사협회 역시 수많은 소송과 맞고발 속에 있었다. 이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소송 남발’ 그 자체가 큰 상처로 남았다. 기본적으로 승자가 승리를 독식하려고 하지 않고 패자를 존중하며 서로 신뢰를 증진시키는 포용력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리고 패자는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축하하며 패배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자세를 가진다면, 소송의 연쇄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협회장 선거가 지난 갈등을 봉합하는 진정한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