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도, 2020년의 옆집 아저씨도 똑같이 식사 후 이 사이에 낀 음식물을 빼기 위해 가늘고 뾰족한 막대기를 찾았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인간의 본능적인 행위양상은 변하지 않고 단지 그 행위에 대한 과학적 정당성이 부여될 뿐이다.
한국의료윤리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구강 위생의 역사와 치위생의 정체성(저 황윤숙·허소윤)’논문에서는 고대에서 중세, 근·현대로 이어지는 구강위생의 역사에 대해 흥미롭게 기술한다.
고대 종교적 의식이자 주술적 행위로서의 구강위생에서, 구취 제거와 치아미백 등 심미적인 것을 추구한 구강위생, 이후 구체적인 병소 발견과 함께 보존, 예방적 행위로 발전하는 구강위생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짚는다.
치간공극의 탐침은 세련된 기술 없이도 인류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었던 구강위생행위였다. 인류학자들은 2만 년 전에서 4만 년 전 사이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구개골 화석에서 식편을 빼기 위해 이를 쑤신 증거를 찾았다. 또 B.C. 3000년 메소포타미아 고분에서 이쑤시개를 찾아냈다. 심지어 4000년 전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에서 발견된 화장품 세트에는 섬세하게 다듬어진 이쑤시개가 포함돼 있었다. 고대 로마의 상류층은 손님이 오면 숟가락과 포크 외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철제 이쑤시개를 제공하곤 했는데, 때론 금으로 만든 이쑤시개를 선물용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 같은 치아세정행위는 단순 구강위생만이 목적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는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기원전 500년 경 석가는 제자들에게 아침에 일어나 보리수의 작은 가지로 치아를 청결히 하도록 가르쳤으며, 이집트의 바빌로니아인들 사이에서는 죽은 사람의 구강을 세척하는 장례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시대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에서는 완벽히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구강위생행위가 필요 없다는 사상을 가졌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만큼 강하면 굳이 이를 닦지 않아도 된다는 비과학적 생각을 한 것이다.
# 중세에는 미적관점 구강위생
중세로 넘어오면서부터는 미적 관점에 더욱 치우쳐 구강위생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성적인 매력을 위해 소금이나 식초물, 와인 등으로 입을 헹궈 구취를 없애고, 황산에 담근 나뭇가지로 양치질을 하거나 황산아연을 치아와 잇몸에 바르는 다소 무식한 방식으로 치아미백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서양과 동양 모두 사람의 감정 상태를 구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는 것. 스트레스가 교감신경을 활성화 시켜 입을 마르게 하고 구취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옛사람들도 경험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17세기 이후에는 각종 치과재료의 발달과 거울의 보편화로 사람들이 더욱 미적인 구강위생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구강위생을 치아 건강 보존, 예방의 관점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거의 18세기에 와서다. ‘근대 치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에르 포샤르는 저서 ‘Le Chirurgien Dentiste(치과외과의)’에서 치아를 보존하는 법과 하얀 치아를 유지하는 법, 잇몸을 튼튼히 하는 법 등을 소개하며 예방, 치료의 개념으로서의 구강위생법을 제시한다. 강철로 만들어진 치석제거기 사용법 등 오늘날 스케일링 술식을 제안했다.
이후 19세기 치과의사 팜리가 기존의 이발사이자 외과의사, 치과의사 등의 역할을 혼재해 왔던 직군의 직업의식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군으로 ‘치과의사에 의한 구강위생’이란 패러다임 전환을 이끈다. 그는 “치의학 영역의 발전 여부는 사회가 치아의 질병 예방의 중요성을 주목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미경을 통한 우식의 병인기전이 밝혀지며 치의학은 마침내 19세기에 와서야 예방의 시대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치과의사를 도와 치석제거 등 예방적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새로운 직군, 치과의료의 새로운 직업분야인 치과위생사가 등장한다.
입속 성가심을 없애기 위한 본능에서 신에 대한 믿음과 수양으로, 이성에 어필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현미경을 통해 치면세균막과 구강세균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세상으로까지 발전해 온 구강위생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