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지정학적 가치와 성공

2020.10.21 11:30:31

시론

사람이 성공하려면 줄을 잘 타야 하는데, 가장 잘 타야 하는 줄은 탯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많은 부분, 성공에 필요한 기본조건도 어느 정도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우선,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DNA로 대표되는 생물학적 요인이 결정된다. 아기가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 부모의 영향력으로 만들어지는 환경적 요인이나 형제, 친척, 이웃들과 이루는 인간관계 요인, 그로부터 파생되는 요인들도 일정 부분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든든한 배경없이, 성공을 향해 노력하고, 여기에 운이 더해져 크게 성공하는 것도 보아왔다.


국가 차원에서 앞의 탯줄 이야기를 적용해보자. 지구상에서 한 국가가 타고난 지정학적 요인, 즉 물리적으로 고정된 요인은 국가의 역사적 생존과 성쇠를 판가름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 상에는 70억 이상의 인구와 195개 정도의 국가가 있다. 국가의 경제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이용되는 주요 경제지표인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으로 195개 국가의 경제규모에 순위를 매길 수 있다. 가령, 국내총생산 최상위인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천연 요새로 활용하며, 풍부한 식량자원, 지하자원과 에너지 자원을 가지는데, 땅덩이도 크다. 반대로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국가인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현재진행형으로 가라앉는 지리적 악재를 겪으며 국내총생산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총생산 상위권의 나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후, 지형, 천연자원, 국토의 크기, 이웃 나라와의 관계 등에서 지리적 특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은 국내총생산 12위였는데, 올해 9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컸던 브라질, 캐나다, 러시아 경제가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흥미롭다. 필자는 여기서 두가지 물음을 던지고 싶다. 대한민국은 과연 지리적으로 이점이 있는 나라인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위상을 높이는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를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가만히 보자. 좋은 지정학적 위치인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장점은 안정성이다. 동쪽과 남쪽으로 일본이라는 지형적 방패를 가지며, 지진이나 태풍, 해일 등의 자연재해로부터의 피해를 줄이고 있다. 그러나,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같은 대양에 접하지 않아 해양으로 쉽게 뻗어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일본과 중국을 이으며 문화 전달자, 완충지대이기도 하였으나, 주변 국가들의 경유지가 되기도 했다. 몽골, 명나라, 청나라,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수세기에 걸친 끊임없는 침략을 당하면서 지리적 고립이 아닌 정치적 고립을 스스로 택하였고, 18세기에는 은자의 왕국(hermit kingdom)이라는 별칭을 갖기도 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지형적으로 머리 위에 북한이라는 리스크도 얹고 있다. 북한은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칭하지만, 실상은 왕조국가에 가깝다. 한 가족, 하나의 당이 소유한 독재국가이다. 21세기에도 북한의 인민들은 빈곤, 부패, 임의 체포와 재판, 언론 검열, 수용소 등의 문제로 잔혹한 나날을 보낸다. 북한의 정치체제가 붕괴된다면,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수도인 서울과 휴전선 사이의 거리는 50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고, 대한민국의 인구와 산업기반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북한의 군사적 공격에 절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천연자원과 남한의 기술과 자본 등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겠다. 다만, 대한민국과 주변 국가들의 복잡한 정치적 입장들이 있어, 통일이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종합하면,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축복을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세계 최고로 발전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을까? 그리고,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었을까? 필자는 유연성과 창의성, 빠른 판단력과 성실함으로 이루어진 한국인의 정신적 힘에 근거한다고 본다. 이 땅이 겪은 수많은 역사적 고난과 경험에서, 우리 민족은 상황에 대처하는 유연성을 획득하였고, 삶을 회복하기 위한 창의성, 판단력을 키워왔다. 또한, 삶을 재건하기 위해 성실하게 살아왔고,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DNA가 현재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인 정치 지형, 자본과 물자의 흐름, 항공분야의 발달, 과학 기술의 발전 등이 우리에게는 ‘운’으로 작용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되지 않았을까? 한국의 정신은 미래지향적이며, 한국 문화의 가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녹록지 않은 우리의 지정학적 조건은 우리의 정신적 힘을 길러냈고, 대한민국의 성공과 발전,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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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희 경희치대 구강내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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