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은 포기에서 온다

  • 등록 2021.05.17 13: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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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2448번째

얼마 전 진료실에서의 일이다.

얼굴이 작아지고 싶다를 주소로 30대 여자 환자가 내원하였다. 이미 윤곽수술인 돌려깍기(광대축소술, 사각턱수술, 턱끝수술의 윤곽 3종 수술을 말하는 것으로, 얼굴의 윤곽선 부위를 돌아가면서 깍아서 얼굴을 작게 하는 수술을 말함)는 몇 년 전에 시행하였고, 이후 광대수술 부위 뼈가 잘 붙지 않아서 재수술까지 받은 환자였다.


그 외 기본적으로 앞트임, 뒷트임을 포함한 쌍커풀 수술과 몇번의 코수술은 이미 받았고, 지방이식, 필러, 그 외 기타 피부과 시술들도 여러 번 받은 상태였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인중축소술까지 했음에도 가만 있을 때 입술 밑으로 보이는 앞니의 노출량이 적은 환자로, 결론적으로 양악수술을 포함한 모든 뼈수술을 동원해도 얼굴의 길이나 크기를 줄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환자의 외모가 보기 싫은 상태였냐 하면,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많은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너무 과하지 않은 상태였고, 누가 보더라도 예쁘다고 생각할 만한 외모였다. 하지만 환자는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이었고, 매번 촬영물을 보면서 외모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이 때 상담을 담당하는 나로서는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환자에게 더 이상의 수술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되,
1. 환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아야 하고,
2. 그렇지만 최대한 단호해야 한다. 
- 환자분은 입술 아래로 보이는 앞니의 노출량이 적다. 이는 위턱이 수직적으로 길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인중축소술을 받아서 인중을 줄이지 않았냐? 더 이상 위턱을 줄일 부분은 없다. 아래턱도 약간의 무턱이 있는 상태에서 턱끝전진술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여기서 더 아래턱을 회전하거나 넣어서 얼굴을 작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없다. 결과적으로 얼굴뼈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없다. 그럼에도 환자분이 얼굴뼈 수술을 원해서 어딘가에서 수술을 받는다면, 반드시 후회할 결과가 생길 것이고, 그 이후에는 다시 예전으로 회복할 수 없다.


이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환자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기분 나빠하거나 많이 실망하지는 않은 눈치이다.
-지금 환자분은 이미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수술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피부가 얇아지는 느낌이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의 결과는 나쁘지 않지만, 더하면 곧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최소 5년, 가급적 10년은 아무것도 하지 마라.


기세를 몰아 여기까지 단숨에 달렸다. 환자는 비슷한 이야기를 단골 피부과 원장님께도 들었다고 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다. 상식이 있고, 직업윤리가 있는 의사라면 누구나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니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다 해준 듯 했다.

 

이제는 좀 더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단계로 넘어가 보자.
-환자분, 만족은 항상 어느 정도의 포기에서 옵니다.


지금 환자분의 외모를 동년배의 여자들 중에서 순위로 메긴다면 몇 등쯤 될 거 같나요? 제가 볼 때는 20-30등은 될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몇 등이 되면 만족하시겠어요? 10등이 되면 만족할까요?


설사 10등이 되더라도 5등이 되고 싶어서 또 상담을 다니지 않을까요? 설사 1등이 되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면 젊었을 때의 내가 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결국 어느 선에서 포기를 하지 않으면 만족은 없어요.
그런데 포기를 위해서는 내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필요해요. 그래야 납득하고 포기를 할 테니까요? 환자분은 여기서 얼굴이 더 작아지려면 “다.시.태.어.나.야.합.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필살기를 날렸다. 

현실에서의 만족은 항상 포기를 전제로 한다. 예전에 현대인이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조사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0억인가 30억인가 했던 거 같다.


그런데 그건 대부분 사람들이 당장 2-3억이 없어서 생긴 결과일 것이다. 20억이나 30억을 가진 대부분 사람들은 200억과 300억을 가지지 못해 불행해하지 않을까?


본인이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하기만 하면 행복은 없다.

포기를 모르는 열망은 인간관계에서는 스토커를 낳고, 자녀 교육에서는 [스카이캐슬]을 만들며, 일에 대한 열정에서는 [위플래시]가 된다. 이 모든 것은 파국으로 막을 내린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의 명대사를 따오면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에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만족을 하고 욕심을 버린다면, 세상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이 자연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가 있다.

 

상담이 마무리될 때쯤 환자에게 다음과 같이 권했다.
-이제 자꾸 거울 들여다보고 문제를 찾으려 들지 마시고, 날씨 좋은 날 햇살도 좀 쬐고, 예쁜 까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좋은 책도 읽고 하시라. 그래도 힘들어질 때가 오면 정신과 상담도 받으세요.
환자는 웃으면서 “정신과는 이미 다니고 있어요” 라고 답하며 진료실을 나섰다.

황종민 올소치과 구강악안면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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