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品 이야기

2022.03.16 14:49:40

시론

아내가 핸드백을 하나 들고 나와 필자에게 어떠냐고 묻는다. 괜찮아 보인다고 하자 시집간 딸이 엄마에게 보낸 선물이라고 한다. 딸이 갑자기 친정어머니에게 선물을 한 이유는 자신은 ‘명품’ bag을 선물로도 받는데, 치과의사의 부인인 친정어머니는 그 흔한 ‘명품’ bag도 변변히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는 선물 받은 bag을 들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것 같다. 금년 겨울은 추위와 미세먼지가 번갈아 나타나는 날씨를 보여주어, 평소에도 목감기가 잘 걸리곤 하는 필자에게는 마스크와 목도리가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필자의 현재 직장으로 발령을 받은 초창기에 타과 대학원생의 논문을 지도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대학원생이 고마움의 표시로 필자에게 “명품 목도리”를 선물(그 당시는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한 적이 있다. 소박하게 사는 필자의 환경에서 ‘명품’을 두르고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워 잘 모셔두었는데, 최근 2년간 꺼내 쓰는 일이 많아졌다. 어쩌다 세탁 등의 이유로 다른 목도리를 두르는 날에는 왜 그런지 목 부위가 더 추워지는 느낌이 든다.

 

학기말이 되면 지난 학기 동안에 필자가 저술한 책의 판매고를 알려주는 이메일이 한 통씩 도착하곤 한다. 이번에도 예상보다 적은 판매 부수에 대해,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인 출판사 사장님께 필자의 저자로서의 부족함을 표현하는 답신을 보냈다. 해당 책의 제목은 ‘R을 활용한 구강보건통계학’이란 책인데, 치과대학 교수 누가 보아도 요즘 잘 나가는 ‘임플란트’나 ‘교정’, ‘심미보철’과 같은 과목과는 거리가 먼 과목이니, 굳이 치과대학에서 빠듯한 시간을 내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설사 공부하더라도 굳이 필자의 책을 채택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일반 개원치과의사의 입장에서는, ‘구강보건통계학’ 같은 과목은 거들떠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과목이 될 것이고, 한 달 수입과 지출이 얼마인지, 치과 경영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는 ‘통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산술적인 ‘집계’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저널은 물론이고 외국 저널이라도 읽게 되는 경우에는, 그리고 심지어 본인의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에는,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S***”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통계 software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다국적 기업인 “I”사의 지사 자격을 지닌 “D”사가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으로, 상업적 프로그램이니, 상품의 반열로 비유하면, ‘명품’에 속할 것이다. 유명한 상업적 프로그램이다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아, 우리 나라에서 통용되는 S*** 프로그램 중 절반 이상이 불법 복제 프로그램이 아닐까 극단적으로 추측도 해 본다.

 

필자는 수년 전에 해당 프로그램의 한국 지사의 도움을 받아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구강보건통계학 책을 저술한 바 있다. 하지만, 배우는 학생들이나 스스로 공부하는 대학원생 등으로부터, 해당 프로그램을 구매하거나 학교에서 쉽게 실습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듣곤 했다. 대학의 재정이 풍족하거나(국립 대학과 같이), 연구비가 풍족한 교수님들이나 교실 이외에는, 학교나 연구실이 아닌 집안 거실 등에서 통계분석을 하려면, 안타깝지만 불법복제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치과대학이나 치위생학과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구강보건통계학 분석을 실습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어려움이 커지는 것이다.

 

필자의 곁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몇몇 동료나 후배들은, 그냥 S***를 편히 사용하면 되지, 왜 굳이 새삼스럽게 R을 선택해서 책을 다시 만들어 고생하는지 묻는 경우가 있다. 대답은 우리 후배들이 조금 더 편히 살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대답해 주었다. 통계 분석은 ‘목적’이 아닌 ‘수단’인데, 이 수단이 ‘경제적 제약’을 주어, ‘목적’인 수업이나 연구과정에 방해를 주면 안된다는 의도에서, 배우는 입장에서는 R이라는 언어를 습득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상업성이 배제된 R 언어를 활용한 구강보건통계학 교과서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20년 전만 해도 현재 우리가 치과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M”사의 프로그램이나 “한”사의 프로그램을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사거나, 매년 사용료를 지불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에 대학원에서 논문 지도를 받고 있는 대학원생이나 지도교수가, 불행하게도 불법복제품을 사용하다가 단속이라도 받게 되거나, 단속의 두려움으로 통계적 분석에 제한을 받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선생’의 사전적 의미는, 먼저 진리를 깨닫고 이를 가르쳐주고, 배우는 사람들에게 진리에 대한 의혹을 품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풀이되며,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살다가 본인이 느낀 불편함이나 예상되는 불편함을 ‘후배’ 내지는 ‘후학’에게 물려주지 않아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향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어려움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의학 등 다른 전공과목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R을 활용하여 통계학적 분석을 시행하고 있는 추세에 후배들이 뒤처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공짜로 사용할 수 있고, 세계인이 모두 사용하는 R 언어를 활용한 구강보건통계 프로그램을 후배들이 자유롭게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별로 인기 없는 저서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명품’ 통계 프로그램은 누가 무어라 해도 ‘명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단’이라는 것이다. 힘들게 ‘명품’을 구매하는 대신 R이라는 세계 공용 통계 언어에 우리의 우수한 두뇌를 접목하여 분석한다면, 우리가 만들어낸 논문 등의 목적물이 ‘명품’으로 인정 받는 일에는 아무 하자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가의 명품 운동화를 신어야 육상 금메달을 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60세를 넘기면서 백발이 무성해진 필자도 이해할 수 있는 R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수 고대구로병원 치과 예방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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