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삶의 의미

2022.05.18 15:07:12

황충주 칼럼

매일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집에 들어와 지친 하루를 끝낸 후 낮에 받았던 스트레스나 신경써야 할 여러 일을 잊기 위해 술이나 게임 등으로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거나 기절하듯 잠이 들기도 한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쳇바퀴 돌 듯 병원으로 출근하여 환자를 보는 것이 우리의 하루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살아가는 진지한 의미보다는 말초적인 자극이나 쾌락과 같은 단순한 흥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건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그 이유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뭘 해도 무기력하고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거나 살아가는 목적이나 삶의 의미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갖지 못했을 때는 갖고 싶고 일단 어느 정도 얻게 되면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싶어 한다. 얻고 나면 지키고 싶고, 지키고 싶을 때는 잃을 것을 두려워한다. 바로 이런 욕망과 걱정과 두려움이 우리를 항상 바쁘게 하고, 스트레스에 휘둘리게 한다. 환자를 왜 이렇게 많이 봐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무리하다가 자신의 건강을 해쳐 치료를 위해 이제까지 모은 재화를 다 쓰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삶은 분명 유한한데 목적이 아닌 수단을 위해 주객 전도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진정으로 중요한 삶의 목적이나 의미가 뭔지를 우리 스스로 질문해 봐야 한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조슈어 스토트 임상심리학 교수 연구팀의 치매 등의 인지장애 발병 위험을 낮추는 데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보기 위한 연구 결과, 노년에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느끼며 살아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한 인지장애가 발생할 위험이 약 19% 더 낮았다. 연구팀은 “삶의 목적의식이 강하면 신체활동과 사회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이는 기억력과 언어능력, 사고력의 저하를 예방해 치매 발병 위험을 낮춘다.”라고 설명했다.

 

치매 발병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면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센터는 2021년 2월 1일부터 5월 26일까지 한국을 비롯해 뉴질랜드 스웨덴 프랑스 그리스 독일 캐나다 싱가포르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일본 영국 미국 스페인 대만 등 17개 선진국의 성인 1만8850명에게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개방형 설문 조사를 진행하였다. 11월 18일 발표된 삶의 의미를 묻는 설문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들이 첫째로 꼽은 가치는 가족(38%)이었다. 이어 직업(25%), 물질적 풍요(19%)가 2, 3위를 차지했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게 ‘가족’이라는 답변이 1순위를 차지한 나라는 17개국 중 14개였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가족이 삶을 만족스럽게 만든다.’라고 답한 나라는 호주(56%) 뉴질랜드(55%) 그리스(54%) 등이었다. 미국은 49%로 4위를 차지했다. 평균 10명 중 4명이 가족을 삶의 가장 큰 의미라고 답변했으며 그리스, 호주, 뉴질랜드에선 이 비율이 50%를 넘었다. 이들은 부모, 형제, 자녀와의 화목한 관계, 함께 지내는 즐거움, 자녀의 성취를 보는 기쁨, 자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 등을 삶의 의미로 꼽았다. 스페인에선 건강이, 대만에선 사회가 1위였다. 또 유럽인들은 자연에서, 미국인들은 종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경향이 더 강했다. 정치성향별로는 상대적으로 진보파는 자연에, 보수파는 종교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직업 항목에서는 이탈리아의 응답률(43%)이 가장 높았다. 이탈리아는 가족과 직업이 대등한 비율로 나타났다. 2순위는 스페인(40%), 3순위는 스웨덴(37%)이었다. 한국에서는 직업을 중요한 의미로 여긴다는 응답이 6%로 전체 17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꼽은 나라는 스페인(48%)이었다. 네덜란드는 31%, 독일·스웨덴은 22%로 나타났다. 건강 항목에서 한국은 17%로 17개국 중 9번째로 응답률이 높았다. 종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응답률은 미국이 15%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은 뉴질랜드 5%, 호주 4%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1%로 17개국 중 15번째였다.

 

한국인은 조사 대상국 중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삶의 가장 큰 의미로 꼽았다. 가족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답변은 16%로 17개국 중 16위였으며 가족은 물질적 풍요, 건강에 이어 3위에 그쳤다. 한국인 가운데 물질 풍요를 삶의 가장 큰 의미로 꼽은 비율만 놓고 보면, 전체의 19%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2위인 건강(17%), 3위인 가족(16%)과의 차이도 근소하다. 퓨리서치 센터는 주어진 항목에 대한 응답자의 비율뿐 아니라 여러 항목 사이의 상대적 순위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이 물질 풍요를 삶의 가장 큰 가치로 꼽으며 그 이유로 댄 것은 호구지책, 내 집 마련에서부터 가족 부양 자금, 부채 상환, 여행 같은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여유자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30년간 사형수들을 상담해 온 양현자 심리상담소 소장은 ‘인생 9단’이라는 책에서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 중의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야. 맛있는 것도 사주고, 경치 좋은 곳도 구경시켜 주고 싶은데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때란 말이야. 오늘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고 오늘이 사랑을 받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어. 그러니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사랑 표현을 내일로 미루지 마. 내일은 상상 속에만 있는 거야. 아무도 내일을 살아 본 사람은 없어. 세월이 가도 매일 오늘만 사는 거야. 사랑도 오늘뿐이지 내일 할 수 있는 사랑은 없어.’라고 얘기한다.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사랑해’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단어도 ‘사랑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면서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현재와 내일의 일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세월이 흐른 후에 후회할 일이 많을 것이다. 삶을 바르게 살고자 하는 우리는 살아가는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현자의 어려운 철학적인 논리가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보편적이고 올바른 가치에 기준을 둔 자기 나름의 개똥철학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삶의 목적과 의미가 바로 가족이고 서로의 사랑이라면 힘든 여건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단순하고 소중한 깨달음을 주는 가정의 달인 5월이다. 우리 주변의 귀중한 사람들 특히 가족에게 사랑의 표현을 마음껏 넘치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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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주 연세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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