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이야기

2022.10.05 11:52:02

임철중 칼럼

온 국민을 열광시킨 한국 여자배구의 신화는, 2018 여름 팔렘방 Asian Game에서 시작되었다. 세계적인 레프트 공격수요 환상적인 디그의 여왕 김연경을 정점으로, 순발력과 체공력이 뛰어난 공격수 이재영 언니와, 항상 볼 끝을 살려서 띄워주는 세터 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삼각편대를 이루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잔뜩 부풀었던 온 국민의 기대는, 난데없이 터져 나온 쌍둥이의 과거 학교폭력 폭로사건으로 여지없이 깨어지고, 메달의 꿈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여론이 들끓자 연맹은 가장 편리한 탈출구를 선택하여 쌍둥이의 퇴출을 결정한 것이다. 필자가 2021년 3월에 카톡방에 올렸던 글을 소개한다.

 

“학폭 피해자에게 학교는 바로 현세의 지옥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치러야 하는 죄 값은, 단심 제 군중 재판(單審制 群衆裁判)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시효도 지나간 미성년자 시절의 범죄에 대하여, 마땅한 죄 값을 치르고 나서 다시 사회에 기여할 길을 열어주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러나 뜻밖에 일어난 전력(戰力) 차질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표팀은 예상외의 감투 정신을 발휘하면서 도쿄올림픽 4강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하였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어도, 국민의 열화 같은 갈채가 쏟아지고 팬들의 여자배구 사랑이 전보다 더욱 불타오른 이유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국제배구연맹 주최 네이션스 리그(FIVB VNL)에서, 한국대표팀은 승점을 단 한 점도 얻지 못한 채, 12전 전패로 꼴찌를 기록하였다 (2022. 7. 4). 일본에 0:3 완패, 중국에는 겨우 한 세트를 건졌다.

 

세상에 풍년만 계속되라는 법은 없는 것인지, 어느 분야이든 스타 중의 스타는 몇 년에 한 번씩 손에 꼽을 만큼만 태어난다. 김연경 양효진과 김수지 등 베테랑들의 대표팀 은퇴와 세대교체에 따른 전력 상실은 예상했던 바지만, 평균연령 24세의 차세대 국가 대표팀을 이끌어갈 ‘96년생 쌍둥이 자매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방송 언론에 일상생활을 점령당한 작금의 사회에서, 소위 생활의 지혜 또는 인생의 경구(警句)라는 말들이 흘러넘친다. 특히 나이 지긋한 연배의 카톡방을 보면 일찍이 법정스님이 설파한 촌철살인의 명언조차, 조자룡 헌 칼 쓰듯 너도나도 함부로 남용하는 바람에, 귀한 뜻이 흐려져 거의 식상(食傷)할 정도다. 오히려 백년 천년 넘어 전해오는 속담과 잠언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언어의 레트로(Retro: 復古) 현상이라고나 할까? 그런 뜻에서 법언(法諺)을 통하여 학교폭력 사태를 비추어보자.

 

“최악의 화해가 최선의 판결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다. 승패가 분명한 판결은 어느 한 쪽에, 때로는 쌍방에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양측이 직접 대화하고 자발적인 승복과정을 거치는 화해와 조정(和解 調停: reconciliation & arbitration)은, 앙금을 최소화한다는 뜻이다. 고소·고발이 일본의 10여 배이고, 법을 초월해야 할 의협과 치협 등 전문직 단체로부터 종교 정치문제까지, 모든 것을 법정에 떠넘기는 ‘소송 공화국’ 대한민국의 국민화합을 위하여, 화해의 정신을 살려내야 한다. 사법부가 앞장서서 ‘민사조정제도 활성화’에 부단히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교폭력 문제의 특성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첫째 미성년자의 범죄에 대한 성인적인 처벌이라는 점이다. 둘째 시효(時效)에도 문제가 있다. 셋째 혐의만 가지고 사실상 징벌(퇴출)을 가하는, 단심(單審)제의 여론재판이 되기 쉽다. 넷째 가해자가 유명해지지 못했다면(인기, 고액연봉 등), 처음부터 사건화 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다섯째 가해자는 법정다툼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국민기본권은 물론 정상참작과 대속(代贖)혜택도 없다. 정권이 무능할수록 위원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책임회피용으로 급조한 유명무실 위원회를 없앤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학교폭력처럼 시차(時差) 또는 이해 당사자의 생애 주기적 변화로 인하여, 법적 처리가 어려우면서도 국민화합에 파장이 큰 문제에 대하여는, 이를 적극 검토할 기구가 필요하다.

 

교육계와 체육계 및 법조계가 협력하는 준 사법적 기구를 고려하자.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위로와 보상으로 국민화합을 도모하고, 가해자에게는 속죄의 기회를 주어 귀중한 인재를 낭비하는 매몰 비용을 회수하자. 사람이 곧 자원이라는 신념 속에서 대한민국 신화가 탄생하였고, 반대로 인명(人命)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북한정권은 세계 꼴찌로 전락하였다. 피해자가 항상 문을 두드릴 수 있고, 가해자에게 제2의 기회를 열어주는, 명실상부한 ‘학교폭력 신문고(申聞鼓)’ 설립에 기대를 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철중 치협 대의원총회 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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