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꿈(각설이)

2022.11.02 16:12:43

시론

‘백수의 꿈’은 과거에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기억들을 접목해 현실과 혼돈할 수 있는 필자의 지어낸 짤막한 얘기꺼리임을 밝혀둔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아서인지 장날 약장수가 등에 북을 메고 발로 탕탕 굴리면 북이 쾅쾅 울리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신명나는 장단에 구경꾼들이 모여 함께 즐기며 약도 사고하는 풍경을 많이 봤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생소하겠지만 동동구리모라 하며 화장품을 팔기도 하며 시골장터의 운치를 회상해 보기도 한다.

 

명절날이나 정월대보름 그리고 각종 마을행사에 사물놀이패들이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가리며 징을 칠 때 신나서 덩실덩실 따라 춤추던 기억이 뇌리에 남아 늘 신명나는 분위기에 빠져들었고 흥이 기질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지금도 지신밟기 하면서 꽹가리 징을 치면서 귀신을 쫓아주기도 한다.) 이후로 오락부장이 되어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걸어가면서도 끄덕거리는 게 생활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 악대부 선배들이 음악에 관심 있냐며 함께 연주하면서 재미난 서클활동을 하자고 제의했다. 온갖 미사여구를 써가며 꼬드기길래 예전에 몸집이 작을 때 이유 없이 큰 애들이 놀리거나 맞은 아픈 기억 때문에 보호해 줄 선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하겠다며 수락했다. 수업 마치고 연주실에 오면 선배들 연주할 수 있게 악기거치대, 보면대와 의자정돈은 물론이고 늘 먼지가 나지 않게 깨끗이 준비해야하는 고달픈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공부할 분위기도 안 되고 선배들도 딱히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으니 큰북을 담당하라고 했다. 덩치가 있으니 제일 어울리고 배우기도 다른 악기보단 간단하니 연주하면서 사인 주면 힘차게 쿵쿵 채를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길래 나 역시 옛날에 북 장구, 징 등을 보며 신명났던 기억이 있던 터라 처음엔 팀웍이 되어 북 치는 재미가 싫진 않았는데 너무 단조롭기도 하고 북 칠 기회도 별로 없었다.

 

연습할 때 빽빽거리는 금관악기며 쿵작쿵작, 칭칭거리는 타악기이며 낑깡거리는 현악기 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 힘들었다. (사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고음에 시달려 난청이나 이명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 치과의사들도 직업적으로 자세가 습관적으로 숙여지고, 평생 고주파소음에 노출되어 이명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평상시에 주의하시길 당부 드린다. 술자도 이명에 시달려 여러가지 치료를 받고 있으나 신경 덜 쓰고 마인드 컨트롤이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함.(자세가 곧발라야 혈류가 원할히 공급되어 이명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자세 바로 하고 신경 끄면 다소 완화가 되는 것 같다.)

 

실컷 기다리다가 둥둥 큰북 한 번 쳐 주고... 종목을 바꾸려 해도 각자 자기 파트가 있어서 바꿀 수도 없고 또 배울 시간도 없어서 북 치는 게 내 운명인가 보다 하며 보내고 있었는데, 악대부의 큰 행사이기도 한 ‘시민축제의 날’에 우리학교가 거리행진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거리행진대회 때 줄과 열을 맞춰 행진하며 연주하는 기분은 좋았는데 항상 제일 뒤에서 무거운 큰북을 메고 따라가면 정말 숨이 차 헉헉거리기 일쑤고 축제의 거리에서는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있는 힘을 다해서 쳐야 멀리까지 울려 퍼지기 때문에 무조건 세게 치면서 안간 노력을 다했다. (지나고 보니 그 순간이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이야...)

 

공부할 겨를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설계도 하지 않은 채, 우연하게도 OO대학교 레크리에이션학과에 입학했는데 졸업 후 직장 못 구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떠돌이 각설이패를 만나게 되었다. 혹시 써 줄 수 있는지 부탁하며 내 재능을 테스트 받았다.

 

큰북 솜씨며 그간 보고 배운 음악적 리듬을 타며 박력 있게 두들기며 흥을 돋우는 추임새에 각설이패 단장이 숨은 인재 찾았다며 흔쾌히 받아줘서 정식 각설이 단원이 되었다. 게다가 레크리에이션과를 나왔기 때문에 친화력이 좋아 화술은 좀 부족하지만 어눌한 말씨가 오히려 매력이라며 손님들도 좋아하고 인기가 좋았다. 점차 사람들 앞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노래도 부르며 흥을 내니 넉살 좋다며 앵콜도 자주 받고 해서 나도 모르게 각설이패에서 제일 분위기를 잘 이끄는 중심인물이 되었다.

 

입지도 점차 커지고 연주를 멋있게 하기 위해 큰북, 작은북, 여러 가지 타악기 세트를 갖춰 신나게 머리 흔들어 두드리며 분위기를 압도했다. 길거리 드러머라고 표현해야 하나? 정신없이 북치며 훌륭한 드러머가 되겠다는 자신감으로 죽자고 연습하며 기량을 쌓았다. 지금까지 큰북 치며 북채를 두드리는 게 몸에 배인 터라 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손놀림으로 두드리니 관객 모두가 탄복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우리 고유의 전통 북과 장구를 응용한 대한 난타 예술단의 단장의 눈에 띄어 30대 초반에 난타 예술단원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채 하나만 잘 두드려도 전문가가 되는 이 세상, 남 탓 하지 말고 노력만 하면 길이 있다. 항상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업급여나 타먹으며 체념하고 빈둥거리는 백수 되지 말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며 찾아보자. 노력하는 자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걸 명심하고 매사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자!

 

 

 

백수의 꿈(각설이)

 

몸에 배인 타고난 신명

무겁고 힘들어도

북 치고 장구 치고 덩실덩실

싫어도 지겨워도 북채만 휘둘러

 

탕~ 탕~ 탕~

큰북만 치는 내 운명

절도 있는 손놀림

채 하나로 모든 것을 걸었다

 

뒤늦게 안 드러머 본능

쿵짜자작 짜자자 작작~

신의 경지가 어디인가

온 세상이 채끝에서 움직인다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길은 바로 가까이에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오직 한길로 고~고~고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광렬 이광렬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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