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치과계 역사 기록·정리 현대치의학 나아갈 길 제시

  • 등록 2022.12.28 19: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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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국근대치의학사’ 편찬부터 평생 치의학 역사 기록
협회사편찬위원장 활동 등 치협 역사 정리 중심에 늘 함께해
2022 치의신보 올해의 치과인상 사회공로부문 - 신재의 박사

“치대생 시절 가졌던 역사에 대한 관심, 이를 어여삐 봐 주시고 작은 응원의 말을 해 주신 은사님 덕분에 역사 공부에 대한 관심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치의신보 올해의 치과인상 수상을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제가 모으고 집필한 자료들이 한국 치의학의 역사를 잘 기록하고 이어지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재의 박사가 2022년도 ‘치의신보 올해의 치과인상’ 사회공로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에서 2개의 학위를 가진 몇 안 되는 인물로, 치과의사이자 역사학자로서 한국 치의학의 역사를 보다 심층적으로 해석하고 기록할 수 있었다.

 

신재의 박사는 2004년 ‘한국근대치의학사’ 출간을 시작으로 2005년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 ‘한국치의학사 연구’, 2012년 ‘한국치과기자재의 역사’, 2015년 ‘한국 현대 치의학의 발전’ 등을 출간했다. 또 협회사 1980년판 편찬위원, 서울지부 회사(증보판) 편찬위원장, 대한치과임플란트학회 30년사·서울대학교 치과병원사 일부 집필, 대한치과교정학회 50년사 편찬위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50년사 편찬부위원장, 협회사(2010) 편찬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는 등 치과계 주요 역사 정리의 주축으로 활동해 왔다.

 

신재의 박사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본과 4학년 때인 1969년부터 시작됐다. 학생 논문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그해 여름을 오롯이 국립도서관(현재 롯데백화점 자리) 참고열람실에서 보냈다. 그리고 서울치대 졸업 전 가을에 200자 원고지 300매 분량의 ‘한국치의학사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를 보고 당시 논문 심사위원이었던 김용관 교수가 “나도 모르는 이런 자료들을 어디서 구했어? 앞으로 계속 이쪽으로 관심을 가져봐”라고 했던 칭찬이 신 박사를 평생 역사학자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신 박사는 이후 여러 치과계 자료들을 모으며 치과의사학회의 일원으로 논문을 저술했고, 각종 치과계 역사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1998년 가을, 단국대학교 사학과에서 본격적으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비원 근처에 있던 자신의 치과에서 한남동으로 역사 공부를 하러 가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2004년 ‘한국근대치의학사 연구(1885-1945)’라는 논문으로 졸업과 동시에 박사학위와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신재의 박사는 “역사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작업에 원래도 흥미가 갔지만, 이쪽으로 관심을 가져보라는 교수님의 한마디가 마음속에 깊게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과학도로서의 길 외에 인문학자로서 공부하고 책을 집필하는 작업은 매우 즐겁고 사명감을 주는 작업이었다”라고 말했다.

 

“제가 모으고 집필한 자료들이

한국 치의학 역사를 이어지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치과계의 역사가 앞으로도

계속해 잘 기록되고 해석되며

후배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 1925년 6월 9일 치협 생일 재의결 기뻐

신 박사는 치과계 역사를 정리해 오는 과정에서 ‘치협의 생일’을 새로 정한 것을 가장 기억에 남고 기쁜 일이라고 얘기했다.

 

지난해 4월 제주에서 열린 71차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는 치협의 창립기원을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 창립년도로 의결했다. 이후 치협 협회사편찬위에서의 논의를 통해 ‘구강보건의 날’의 의미를 담아 치협 창립일자를 ‘1925년 6월 9일’로 최종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는 협회사편찬위 내에서의 격론은 물론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가 개최되는 등 진통이 있었다.

 

신재의 박사는 “치협의 생일을 새로 정한 것이 치과계 역사에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단체든지 자신의 정신을 분명히 가져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치협은 한국인만으로 구성됐던 한성치과의사회의 정신을 가져와 치협의 연원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이 주도한 회를 우리의 시초로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있었던 역사 그대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신 박사는 “한국근대치의학에서 일제강점기를 일본인들이 주도했던 시기라 해서 버려둔다면 역사는 체계화 될 수 없다.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일본인들의 공과를 평가하며 한국근대치의학에서 현대치의학으로 나아갈 길을 밝혔으면 한다”고 밝혔다.

 

신 박사는 이렇게 평생을 치과계 역사를 연구하며 후학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련 서적들을 집필해 왔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동화돼서일까. 신재의 박사의 아들 신유석 교수(연세치대병원 치과보존과장)는 아버지의 책 여기저기 집필에 참여하며 한 몫을 보탰다. 신유석 교수가 연세치대 치의학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없지 않다.

 

신재의 박사는 “우리가 역사를 대할 때는 지금 현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들은 계속돼 온 연구를 이어가며 현재의 관점에서 역사를 얘기해 줄 것이고, 그것은 큰 틀에서 옳은 해석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치과계의 역사가 앞으로도 계속해 잘 기록되고 해석되며 후배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수환 기자 parisien@dailydent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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