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 관한 단상

2023.02.15 15:02:25

Relay Essay 제2540번째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재판을 통해 판결을 받는 방법 외에도 당사자 사이의 협의를 거쳐 조정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매우 효율적인 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정은 결국 당사자 사이의 협상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래서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가장 유명한 강의 중 하나가 협상에 관한 강의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제가 조정절차에 관여하여 보면 많은 분들, 심지어 변호사들조차 협상의 기본적인 원칙이나 기술에 관하여 너무 무지하여 협상을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협상은 기본적으로 양보를 전제로 하되 나에게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것을 포기하고 더 중요한 것을 받아내는 과정입니다. 이는 상대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상대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부분이 약점인지를 빨리 파악하여 내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결과를 얻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 스스로도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지 잘 파악하지 못하거나 너무 쉽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 노련한 상대방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나누거나 분배하는 사건, 예를 들어 토지분할이나 이혼 재산분할 사건에서 종종 사용되는 조정 기법 중 하나는 한쪽이 분배 방법을 정하면 다른 한쪽이 그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피자를 어떤 방식으로 공평하게 나누어 먹을지 결정할 때, 한 사람은 나눌 수만 있고 다른 사람은 나누어진 피자 반쪽 중 한쪽을 선택할 수만 있다면 나누는 사람 입장에서는 최대한 공정하게 피자를 나누어야 자신에게 나쁜 반쪽이 돌아오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뭔가 남의 떡이 커 보이는지 온갖 핑계를 대며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우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조정이나 협상을 할 때 너무 욕심을 내는 당사자가 있으면 저는 이런 상황을 종종 풍선을 부는 것에 비유를 하고는 합니다. 풍선을 크게 부는 만큼 무언가를 가져갈 수 있다고 하면 사람은 누구나 최대한 풍선을 크게 불려 할 겁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부는 것을 멈추어야지, 그렇지 않고 계속 욕심을 내며 불어대기만 하면 결국 그 풍선은 터져버리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되겠지요. 조정이나 협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것은 조금이라도 덜 양보하고 상대방의 양보는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것이 협상의 목표이기는 합니다만 욕심이 과하여 적정한 선을 넘어버리는 바람에 협상 자체가 결렬되어 큰 손해를 보는 경우를 참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정도 선에서 협상을 하는 것이 쌍방 모두에게 이익인지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게임이론 중에 뉴욕대 교수였던 루빈스타인의 이름을 딴 ‘루빈스타인 협상모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협상 참가자들이 서로 번갈아 자신들의 제안을 하고 참가자 모두가 동의할 때에 협상이 종결되는 형식의 게임을 말합니다. 다만 협상이 길어질수록 참가자 모두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전제로 하지요. 예를 들어 건물주와 임차인이 임대료 협상을 할 경우, 협상기간이 길어질수록 건물주는 임대료를 받지 못하는 손해를, 임차인은 입주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 경우 그 손해의 양을 알 경우 두 협상자 모두에게 가장 유리한 임대료는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위 모형의 핵심입니다.

 

위 이론에서 많이 인용되는 피자 예를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1시에 집을 나가야 하는 갑과 을이 함께 피자를 주문해 12시 30분에 피자를 받았습니다. 둘은 갑이 먼저 피자를 어떤 비율로 나눌지 제안하고, 을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10분 후인 12시 40분 을이 자신이 원하는 비율을 다시 제안하며, 을의 제안에 갑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10분 후에 갑이 다시 자신이 원하는 비율을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그 제안으로도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1시가 되면 갑과 을은 모두 피자를 먹지 못하고 집을 나가게 되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피자는 점점 식어서 맛이 없어지므로 12시 30분에 피자의 효용을 100이라고 하면 10분이 지날 때마다 효용이 30씩 줄어들어 12시 40분에는 70, 12시 50분에는 40이 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갑은 최초 어떠한 비율을 제안하여야 갑과 을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만일 갑과 을이 모두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제대로 예측만 한다면 둘은 12시 30분에 7:3으로 피자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최선의 효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만일 현실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12시 30분에 7:3으로 피자가 나누어질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위 문제를 보고 정답을 맞추셨나요? 지금 정답을 보시고도 왜 7:3인지조차 이해가 안 되고 있지는 않은가요?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당사자들의 협상이라면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는 협상이 이루어지겠지만 현실에서는 당사자들이 그리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1차 협상에서 7:3이라는 완벽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 경우 만일 협상을 중재하는 제3자나 협상을 잘 아는 전문가가 대리인으로 나설 경우 1차 협상에서 7:3으로 나누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면 위 협상을 당사자들의 판단에만 맡기지 않고 1차 협상에서 7:3으로 피자를 나누도록 유도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협상은 비즈니스에서만 문제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주말 골프를 두고 아내와 협상하는 남편, 용돈이나 귀가시간을 두고 부모와 협상하는 자녀는 물론이고 중고차를 사거나 부동산을 살 때에도 어김없이 협상의 기술이 등장하게 마련이지요. 비보험 치료비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환자와의 협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결국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피할 수 없는 협상의 과정을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이것도 하나의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나름 마음 편하게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어렵거나 중요한 협상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고요.

하태헌 변호사(서울치대 9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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