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지람과 칭찬

2023.03.29 14:27:31

임철중 칼럼

정관장에서 목캔디를 사서 나오는데 갑자기 몸이 붕- 뜬다. 철제 보조계단에 발이 채인 것이다. 골절은 안 돼! 하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치면서, 오른손을 모로 짚고 앞으로 굴렀다. 툭툭 털고 일어나니, 등에 멘 배낭 덕분에 뒤통수와 등도 말짱하다. 60여 년 전 몸에 익힌 전방회전낙법(앞구르기) 덕분에, 저절로 낙상(落傷)을 모면한 것이다. 겨울 방학 체육관의 기계체조 훈련은 몹시 추웠는데, 깡통에 숯불을 피워 주전자에 물 데우기 등 온갖 심부름은 모두 신참의 몫이요, 군소리는 고사하고 걸핏하면 기합받는 일이 당연한 일과였다. 부상은 아차 하는 순간이므로 고도의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체조반 군기는 삼엄하다. 공중회전을 배우려면 떨어질 때 충격을 줄이는 낙법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말로는 아무 소용이 없고 수백 수천 번 연습으로 몸이 기억해야 한다. 첫 회전은 공포 그 자체다. 조교의 시범을 지겹도록 살핀 뒤, 도움닫기로 가속하여 몸을 솟구치는 각도와 회전시작 시점과 착지(着地) 동작까지, 정확하게 구령에 맞춰야 한다. 회전 순간은 조교가 팔뚝으로 허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회전을 도와준다. 그렇다. 신뢰하니까 몸을 맡긴다.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던 손처럼, 어느 시점에 조교는 슬쩍 팔을 뺀다. 첫 번째 독립 회전의 희열이라니... 신뢰감과 성취감으로, 그동안 쌓였던 불평과 불만은 눈 녹듯 사라진다.

 

불호령과 기합은 훈제연어의 숯불 향처럼, 내 몸의 기억을 도와주는 양념이었나?

 

낙상은 동물 중에 인간만이 누리는(?) 질병이다. 애초부터 직립보행(直立步行)은 자연에 대한 도전이었다. 아기의 따로서기와 걸음마를 눈여겨 살펴보라. 몇 백만 년 적응과 진화를 거쳐 개량된 체형을 갖고서도,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몸이 자세와 동작을 기억하기까지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에 어울리는 골격과 근육을 기르기 위하여 수 없는 성장통을 겪는다. 출산의 고통을 겪은 엄마만이,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보채는 아기의 아픔을 알아, 어르고 달랜다. 엄마는 아기가 단 1초만 따로 서도 손뼉을 치며 응원하고, 한 발짝만 떼고 넘어져도 얼른 끌어 안아준다. 학자들은 의사소통이 시작되는 36개월부터는 자제(自制)라는 인내를 습득시키라고 한다. 만인의 욕구가 충돌하는 사회구조에 합류하려면, 당연히 배려와 양보를 익혀야하기 때문이다. 몸의 기억이 반사운동이라면 마음의 기억은 인내요, 당근의 다른 편에는 채찍도 있음을 배워야 하니까. 이렇듯 인간의 성장기는 여느 동물보다 훨씬 길고 복잡하며, 따뜻한 보살핌이라는 품삯을 요한다. 칭찬과 꾸지람은 바로 보살핌의 양면이 아닌가. 성장기에 익히는 기술(?) 대부분은 몸에 각인(刻印)시켜야만 기억된다. 깎을 각(刻)이다. 고통 없이 깎을 수 있을까? 성장통과 직립보행 수련이라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야, 열심히 일생을 살아갈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나이 들어 골격근이 약해지면 낙상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온다. 일생을 긍정적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또 노년의 낙상에 맞서기 위해서도, 몸과 마음의 기억을 준비해야 한다.

 

험악한 세상이다. 푸틴 침략전쟁 시진핑 팽창주의 트럼프 폭주 평양 핵 공갈에서, 분노유발과 군중선동으로 여론을 만드는 폭민정치(Mobocracy)의 공통점을 본다.

 

생산성을 천문학적으로 높인 엘리트주의(Meritocracy)가 신자유주의로 진화하면서, 양극화의 명암이 극대화되자, 그늘 계층의 증오·분노를 선동하여 공산독재가 실현된다. 공산독재의 속성상, 스스로가 비판하던 자본주의보다 훨씬 심각한 부패 끝에 소련은 해체되지만, 민주교육이 결핍된 국가답게 괴물 푸틴이 등장하여 연방 부활을 노린다. 대결구조가 숨 가쁘게 변하는 상호비판 속에 민중의 증오와 분노는 더욱 증폭되고, 비극은 참극으로 이어진다. 한술 더 뜬 대한민국 정치의 ‘갈라치기’는 우리 모두 기억하는 그대로다. 최고의 고등교육을 자랑하는 국민이 초등학생도 다들 알만큼 얄팍한 갈라치기에 왜 속아 넘어갈까? 해답과 해결책은 교육에 있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공산국가의 헌법 전문은 눈물겨운 형용사로 가득한데, 공허한 수사일 뿐 주어와 동사는 거의 없다고 한다. 반대로 민주국가의 헌법은 윤석열 대통령 어법처럼 정곡을 찔러 드라이하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속는다. 교육은 칭찬과 꾸지람을 겸비해야 한다. 뇌에 저장된 인내와 배려, 척수와 근육에 내장된 몸의 기억은, 칭찬만으로 각인되기 어렵다.

 

“매를 아끼면 애를 버린다(Spare the rod, spoil the child).”라는 격언은 진부하지만, 겉만 번드르한 선동에 휩쓸리지 않는 내공을 쌓기에는 적절한 경구(警句)다.

 

“매를 들어라”라는 퇴행이 아니라, 무한자율(無限自律)을 지양하고 상과 벌의 균형을 갖추자는 얘기다. 대한민국이 어렵게 이룩한 가파르고 높은 성취가, ‘낙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위험한 시점이 아닌가?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철중 치협 대의원총회 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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